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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Jan 15. 2016

#4 영화 <뷰티 인사이드>

그(녀)의 얼굴이 숨기고 있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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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매장을 찾은 디자이너. 멀리서 가구를 소개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사로잡는다. 맑고 투명한 눈망울. 새하얀 피부. 가녀린 목선. 은은한 햇살이 비추는 그녀의 모습에 남자는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한 장면이다. 자고 일어나면 매번 얼굴이 변하는 남자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외면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바라봐야한다는 교훈을 주는 이 영화가 나는 불편하다.

남자(우진)은 그녀(이수)에게 쉽게 다가설 수 없다. 언뜻 보면 그건 매일 변하는 외모때문인듯 하지만 사실은 그가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외모는 아마도 그 다음 이유쯤 될 것이다. 우진은 겉모습의 힘을 누구보다 믿는 사람이다. 잘생긴 얼굴을 이용해 여자를 꼬셔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아침 낯선 모습으로 조용히 일어난다. 도망치듯 빠져 나올 때 밝은 햇빛 속에서 느껴지는 슬픔은 어제 하룻밤을 함께 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상실이 아니라, 지금의 얼굴로는 여자를 꼬실 수 없다는 현실이다. 그는 '박서준' 가면을 썼을 때 그녀에게 고백할 수 있고, '이진욱' 가면을 썼을 때 그녀의 친구들 앞에 나타날 수 있고, '이동욱' 가면을 썼을 때 그녀에게 프로포즈할 수 있고, '김주혁' 가면을 썼을 때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잘생긴 남자의 얼굴에 대한 판타지에 그치지 않는다.

우진이 여성으로 분해 이수에게 다가서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우진은 이수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기 위해 집으로 초대한다. 갑작스런 고백에 놀란 이수가 돌아섰을 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천우희' 슬픈 눈빛이다. 이수는 오랜 고민 끝에 우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집을 방문한다.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뀐 다는 우진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이수는 그 혹은 그녀의 옆에 눕는다. '우에노 주리'의 순수한 웃음은 우진을 향한 이수의 믿음을 아름답게 한다.  이 두 장면에서 우리가 남자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남자의 내면이 아니라 위장된 가면이다.

우진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가면으로 위장된 순백의 영화는 한 편의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마을의 아름다운 미녀는 흉측한 야수의 낡은 성에서 살게 된다. 야수의 성에 갇힌 미녀를 보면서도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야수가 실제로는 멋진 왕자님이며, 아름다운 성도 멋진 궁궐이 될 거라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흉측한 야수는 거짓이고, 낡은 성은 일시적 저주이지만, 그 안에는 멋진 왕자님이라는 진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박서준'의 수줍은 미소를 하고 낭만적으로 그녀에게 다가섰을 때, 그리고 '박서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래이션으로 그녀에 대한 안타까운 사랑이 이뤄지기를 기도했을 때, 가면은 진실이 된다.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해 잠깐 눈을 감은 죄로 그녀를 버스정류장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게 했을 때, 그의 또 다른 가면은 마녀의 저주가 깃든 거짓이 된다. (이 장면의 슬픔은 처음 만나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우진이 도망치듯 나와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핸드폰을 바라볼 때의 그것과 일치한다.) 양쪽 다 가면임은 동일하지만 잔혹하게도 그것은 진실과 거짓으로 나뉜다. 진실이 동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 있지 않지만 보여주고 있는 핵심 주제는 다음과 같다. 아름다운 것은 좋은 거예요. "뷰티 아웃사이드" 이러한 영화의 주제는 애써 예쁘게 치장된 영화의 화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효주를 은은하고 따뜻하게 껴안아주는 창밖의 햇살. 떠나는 김주혁의 슬픔을 보듬어 주는 흣날리는 눈. 유연석의 가벼운 발걸음이 머금은 이국적인 동유럽의 풍경. 빛나는 얼굴을 가까이 보여주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정신없이 컷을 나누며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카메라. 이 모든 가면과 화면은 감독의 연출적 계산을 통해 가능했을 것이다. 가면을 통해 관객에게 맑고 아름다운 판타지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은 교활하기보다는 지나치게 순수하다. 그렇기에 천박하다.

멜로영화의 불황 속에서도 손익분기점을 넘긴 이 영화의 흥행소식에 박수를 보낸다. 이것이 '뷰티 인사이드'의 상업적 성공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믿을 수 없다. 멜로 영화 속 잘생기고 예쁜 남녀 주인공과 아름다운 화면의 등장을 비난하는 것은 유치한 발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뷰티 인사이드'라는 이름으로 동원되었을 때 나는 거북하다. 엉성하게 묶인 영화의 스토리는 아름다운 이미지에 매혹되지 않도록 막아준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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