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장난감 공방
가상현실 게임을 처음 만난 건 사촌 동생의 오래된 장난감 상자에서 발견한 ‘닌텐도 버추얼 보이’ 였어요. 테니스 게임이 들어 있었는데 공이 정말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작고 빨간 단색 액정으로 거기까지 느낄 수 있었던 것도 대단한 거니까요.
그러다 2015년 클라우드 펀딩 붐과 함께 ‘오큘러스’라는 제품이 등장했을 때 저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이 VR 기계에 열광했습니다. 오큘러스가 설명한 VR 원리가 당시 기술로 충분해 보였거든요. 지갑은 이때 이미 열어 두었지요.
하지만 기다리던 오큘러스 리프트는 소문뿐이고 페이스북이 인수를 하거나 ‘둠’으로 유명한 존 카멕이 참가하거나 삼성이 뜬금없이 스마트폰 광고용으로 써먹거나 하면서 환상의 물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https://m.blog.naver.com/smoke2000/220472154808
아쉬운 마음에 레고로 비슷한 걸 만들어 보거나
https://m.blog.naver.com/smoke2000/220733374849
구글의 현실적인 VR에 만족해하다가
https://m.blog.naver.com/smoke2000/221539179408
이런 기묘한 변종까지 만들게 되었는데 그사이 VR 기기는 게임 마니아들의 마니악한 제품으로 마니악한 가격에 등장해서는 마니아들만 아는 그런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오큘러스를 인수한 페이스북은 그럭저럭 덜 메니악한 VR 제품을 출시했지만 어딘지 안타까운 성능의 제품이었지요. 메니악 VR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으니 페이스북을 탓할 수만은 없지만 말이지요.
그런데 다시 오큘러스가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평가가 허공에 어지럽게 흩날리는 걸 보고 있던 저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배송이 완료된 상태였습니다.
페이스북 로고가 찍힌 제품이라니 신기합니다. 상자 뒷면에 소개된 게임은 아직 출시조차 하지 않은 게 절반이고 그나마 우리나라 개정으로 구매가 가능한 건 하나뿐입니다.
그래도 택배 포장을 뜯는 손은 그런 아쉬움을 느낄 리 없습니다.
내용물은 단순합니다. 고글과 조종기, 충전기와 케이블 정도입니다.
옆으로 거의 누를 일이 없는 전원 버튼과 아래로 볼륨 버튼 그리고 전원 버튼 반대쪽에 충전 단자가 있습니다.
머리끈은 이렇게 고무벨트로 되어 있는데 꼭 맞춰 쓰면 뺨이 아픕니다. 아마도 장시간 사용 시 발생할 건강 문제를 고려한 설계인가 봅니다. 착한 페이스북 디자이너 같으니라고!!!
하지만 이런 아쉬움을 넘어 오큘러스 퀘스트 2가 보여주는 공간감은 엄청납니다.
현실 세계도 완전히 버린 게 아니어서 지정한 공간을 넘어가면 외부 카메라가 현실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 벽이 정말 신기해서 마치 만져지지 않는 커튼 같은 느낌입니다.
이렇게 렌즈에 카메라를 붙여서 찍어 공유하고 싶었는데 잘되지 않네요. 오큘러스 퀘스트 2는 안드로이드 기반 컴퓨터라 영상 저장 기능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오큘러스 퀘스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영상으로 확인해 보세요.
어색하지 않은 가상 현실은 확실히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의 반응도 대부분 호의적입니다. VR 계의 킬러 타이틀 ‘비트 세이버’를 돌렸을 때 VR이 처음인 평가자들은 모두 10초도 지나지 않아 ‘아! 이거 정말 재미있다!’고 탄성을 지릅니다.
이렇게 의자까지 흔들어 주면 현실감은 배가 됩니다. 의자를 흔드는 팔의 건강도 배가 되고요.
페이스북이 만든 제품이라 할 수 있는 게 아직은 얼마 없구나 싶었지만 오큘러스 퀘스트 1 때부터 사람들은 이런저런 꼼수를 많이 개발해 놓았습니다. 정식 앱스토어가 아닌 야매 시장도 있고 해상도를 바꾸는 팁도 있습니다.
저도 수많은 팁에 더해 레이싱 드론 배터리 스트랩을 조종기 밴드로 쓰거나
휴대용 배터리로 목덜미를 잡아 무게 중심을 맞추는 소소한 개조를 시작했습니다.
SF 영화에 나오는 괴짜가 쓰는 기계 같다고요? 맞아요. VR을 바라보는 시선 중에는 가격과 성능보다 괴짜들의 전유물 같은 디자인과 애써 손질한 머리를 누르는 밴드가 기술보다 더 큰 장벽이 될 거라 평가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거 쓰면 주변은 하나도 안 보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