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장난감 공방
아침저녁은 여전히 쌀쌀한데 점심 식곤증이 밀려올 때면 아이스커피가 생각나곤 합니다. 그리고 ‘얼죽아’라면 커피도 까다롭게 더치커피지요.
그래서 수년간 여름을 만나면 올해의 더치커피 만들기를 연구하곤 했는데요.
https://m.blog.naver.com/smoke2000/220819670121
수년간의 소박한 연구 끝에 결론은 결국 원두가 좋아야 하고 좋은 원두를 위해서는 돈을 아끼면 안 된다는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서글픈 현실만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더치커피를 위한 인자들 중에 아직도 이게 정말 커피 맛에 도움이 되는지 의심스러운 건 찬물이었습니다. 상온의 물로 커피를 내리나 꽁꽁 얼린 얼음 물로 커피를 내리나 원두가 좋으면 다 소용이 없었지요.
하지만 얼음을 얼리는 수고가 정말로 더치커피 맛에 별 영향이 없었던 건지 의심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었나 아니면 내 입맛이 그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수 없었는지도 수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고민은 앙금처럼 남아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이 문제를 좀 더 간편하게 다시 검토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저 얼음물이라면 더치커피를 내리는 물의 온도를 정확히 제어할 수 없으니 전기의 힘으로 열을 이동시키는 펠티어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후딱 설계도를 그린 다음 USB의 5V로 동작하는 펠티어를 준비했습니다.
전원을 넣으면 13도를 금세 차가워집니다. 펠티어의 반대쪽은 그만큼 뜨거워지기 때문에 작은 팬으로 열기를 빼줍니다. 13도면 그다지 만족스러운 온도는 아니지만
일단 더치커피에 물이 떨어지는 노즐에 연결했습니다. 1분에 몇 방울 밖에 떨어지지 않는 유속이라면 어떻게든 차가운 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었지요. 열전도율이 높은 구리로 잘 감싸줍니다. 만지면 한기가 느껴지는데 역시나 온도는 24도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만들었으니 끝까지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26도의 물을 넣었을 때
고작 3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실패입니다.
목표에 한참을 못 미칠 때는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는 편이 좋습니다. 조금 바꾸는 것으로 성능이 훅 좋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하지만 USB 전원으로 동작하는 컨셉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는데다 노즐 주변에 공간도 없었기 때문에 펠티어 소자를 바꾸는 건 포기하고 방열을 3배 더 늘려보기로 했습니다. 어디 가서 빠르다고 말하려면 3배는 빨라야 하지요.
혹시나 속도에 도움이 될까 전선도 빨강으로.....
22도의 물이 나옵니다. 고작 4도밖에 떨어트리지 못했습니다. 실패입니다.
이제 USB를 포기하고 본격적인 냉각시스템을 꾸며 보려는 순간 처음부터 온도 제어가 가능한 찬물을 만들려는 이유가 맛있는 커피가 아니었나 정신이 들었습니다. 아직 커피 맛까지는 너무 먼 길이 남았던 거지요. 이상한 물건 만들기에 정신이 팔려서는 커피 맛을 즐길 여유를 잊어버렸나 봅니다.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시면서 더 맛있는 더치커피를 만드는 기계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고민해 보기로 했어요. 그래도 생각처럼 동작하지 않는 기계와 난장판이 된 작업대를 바라보자니 입맛이 쓰네요.
그래서 커피 맛은 원래 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