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ddy's Toy Workshop
안심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을 겁니다. 안심은 대퇴부를 들어 올리는 장요근인데 소에게는 등심 안쪽에 있어서 지방이 거의 없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지요. 아주 부드러운 부위라 씹는 맛이 떨어지고 다른 부위보다 육향이 떨어져 고기에 진심인 분들은 의외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위이기도 합니다. 저도 같은 값이라면 안심보다는 채끝이나 부채살을 더 좋아해요.
하지만 세상 부드러운 고기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식기세척기로 만들어 보기로 했거든요.
2kg 원육을 주문합니다. 호주산입니다. 79,800원입니다. 나중에 커서 부자가 되면 한우도 사보고 싶어요.
지방과 심줄 그리고 근막을 조심스럽게 제거합니다. 안심은 지방이 거의 없어 버리는 부위가 많지 않아요. 근막도 기름에 바짝 익히면 안주로 그만이라고 하더라고요. 안심도 머리와 꼬리 부분이 있고 가운데 샤토브리앙이라고 부르는 최고급 부위가 있습니다. 같은 고기인데도 식감이 다릅니다.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을 거니까 5cm로 두툼하게 자를 예정입니다.
수비드는 프랑스어로 진공이라는 뜻이라고 해요. 그래서 진공포장기를 사용하는데 저는 그런 거 없으니까 진공포장기를 대신할 도구를 후딱 설계합니다.
냉큼 3D 프린터로 출력합니다. 이렇게 지퍼백을 좌우로 잡을 수 있어요. 사실 지퍼백에 고기를 넣고 물에 담가 공기를 빼도 되지만 배운 사람은 손에 물을 묻히면 안 되지요. 당연히 지퍼백 안에 물이 들어가도 안되고요. 고기는 물에 빠뜨리는 거 아니니까요.
손질한 고기에 소금과 후추 간을 하고 허브를 넣은 다음 물을 부어 공기를 뺍니다. 공기가 빠지면 지퍼만 잠그면 됩니다. 마늘은 없어서 못 넣었습니다. 수비드 요리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는 버터나 올리브 유를 넣기도 했는데 육즙이 나오면서 대부분 흘러내려 맛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요.
이렇게 준비한 고기를 식기세척기 안에 넣습니다. 아까 만든 통 함께 넣어도 되지만 식기세척기에 뿌려지는 물만으로 가능한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어떤 업소용 수비드 기계보다 적은 양과 에너지로 대량의 수비드 조리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문제는 더 있습니다. 식기세척기는 보통 60~70도의 뜨거운 물을 사용합니다. 이 온도에 고기를 장시간 노출시키면 근육조직 중에 액틴이 단단해지기 전에 익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액틴의 변성 온도는 66도니까 식기세척기로 조리를 하면 자칫 질겨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식기세척기에 정해진 동작시간은 5cm 안심을 조리하기에는 너무 짧고요.
이쯤 되면 식기세척기 제어 프로그램을 해킹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안심 수비드는 56.5도가 최적이거든요. 그보다 낮은 온도도 좋고요.
식기 세척기 안에도 온도 센서가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정확하게 제어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2시간을 익힌 다음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카놀라유로 시어링을 합니다. 카놀라유는 향이 적은 대신 끓는 점이 250도나 되기 때문에 이미 익은 고기를 빠르게 익히는데 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끓는 온도가 270도나 되는 아보카도 오일도 있습니다. 그건 나중에 어른되고 부자되면 한우랑 함께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빠른 시어링을 위해 밑면이 기름에 익는 동안 윗면은 토치로 구워줍니다. 안심 2kg을 몽땅 다른 조건으로 시어링 해 봤는데 안심의 경우는 시어링 시간이 1분을 넘기면 부드러운 식감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더라고요.
바로 먹으면 좋겠지만 자르기 전에 조금 기다려야 합니다. 고기는 육즙이 담긴 빨대랑 비슷해서 시어링을 하면 육즙이 안쪽에 모입니다. 육즙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자르면 몽땅 흘러버립니다.
식기세척기 수비드 맛은 거의 완벽했습니다. 간도 적당하고 부드러운 식감도 훌륭했습니다. 지방과 어울리는 와사비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일부러 단맛이 강한 와사비를 선택했습니다. 행복한 식사였어요.
식기세척기를 못쓰게 되어버렸다는 소소한 문제가 있지만 고... 고쳐야지요.
상상을 현실로 만드세요 : 3D 프린터 (미래의 과학자와 공학자가 꼭 알아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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