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ddy's Toy Workshop
교양인이라면 악기 한 가지는 다뤄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기 위해 저도 악기를 한 가지 다룹니다. 클라리넷입니다.
영화 미션에 주인공이 폭포를 바라보며 연주하는 '넬라판타지아'가 그렇게 멋져 보였거든요. 그래서 틈틈이 조금씩 불어보곤 해요.
클라리넷의 소리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여서 만들어지지만 시작은 이 리드입니다.
갈대를 잘라 만든 이 리드는 입으로 부는 바람에 공진을 합니다.
그럼 관을 통해 이 공진이 커지고 여러 개 구멍으로 바람이 지나면서 주파수가 달라지게 되지요.
그렇게 드라마도, 보고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그사이 심심하면 클라리넷을 불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인터넷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리드를 발견했어요.
영겁의 시간을 자랑하는 중국 알리바바의 배송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인터넷이 이렇게 위험하다는 걸 하루하루 택배를 기다리며 다시 깨닫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투명한 것과 하얀 것 두 가지 플라스틱 리드는 정말로 클라리넷 소리가 납니다. 어딘지 가벼운 깡통 소리가 나고 지독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소리가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나긴 합니다. 불기가 너무 힘들어 좋아하는 넬라판타지아를 연주하려면 수련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지만요.
영겁의 배송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중국의 다른 회사 제품을 찾다가 차라리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적당한 갈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저는 갈대를 꺾어 자연을 훼손하기보다 플라스틱을 더 좋아합니다.
클라리넷 리드 도면을 냉큼 3D 프린터에 넣고
출력합니다. 그래도 식물에 가까워야 하니까 나무 필라멘트를 사용했지요.
두께가 얇아 금방 만들었습니다.
이제 진짜 리드와 비교하면서 열심히 깎습니다. 손에 꼭 맞는 방망이를 깎던 장터의 노인 이야기를 생각하면서요.
색깔까지 그럴듯합니다. 이제 저의 클라리넷 연주는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될 겁니다.
진짜 리드는 옆으로 치우고 중국발 플라스틱 리드는 던져 버린 다음, 새 리드를 시험해 봅니다. 살짝만 불어도 소리가 너무 잘 납니다. 사실 클라리넷은 소리 내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거의 성공한 거죠. 소리는 어떻냐고요?
저의 연주는 음계를 초월한 어나더 레벨이 되었습니다.
아 이건 아니다 싶어 3D 프린터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PLA로 출력했습니다.
역시 살짝만 불아도 소리가 잘 납니다. 하지만 소리는 또 다른 미지에 영역에 도달했습니다.
어떻게 잘만 다듬으면 더 이상 불쌍한 갈대를 꺾지 않고도 불기 편한 플라스틱 리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역시나 예술의 영역은 이과생이 섣불리 접근할 수 있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닌가 봅니다.
다시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카본으로 만든 리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소리도 일반 리드와 구별하기 힘들다고 해요. 전문 연주가도 사용한다고 합니다. 쉽게 변형되지도 않고 불기 전에 물에 불릴 필요도 없고요. 게다가 가격은 10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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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고요.
등짝을 맞을 각오로 위험한 인터넷 쇼핑을 계속하다가 영화 미션의 '넬라판타지아' 진짜 제목이 '가브리엘의 오보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처음부터 클라리넷 곡이 아니라 오보에 곡이었던 거죠. 역시나 예술은 단순히 접근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세요 : 3D 프린터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331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