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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park Feb 06. 2022

자발적 서행

느리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것들.

"님들은 스물넷에 뭐 하셨어요?"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스물넷의 댄스 크루 리더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타 크루의 리더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은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날아와 귀에 박혔다. '나는 스물넷, 아니 혈기 왕성했던 청춘에 무엇을 이루었었나?'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을 터. 물론 나 또한 그랬다. 내 나이 이십 대의 한가운데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인생에서 하루라도 빨리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과 현실의 괴리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막 학교에 복학한 어리바리 복학생은 봉인이 풀린 본능과 형이상학적인 고민의 끝에 한 스스로의 다짐 사이를 줄타기 하기 마련이었다. 빠르게 결과에 도달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토익 시험으로 보러 가기 전 날 저녁에 술 약속이 생기면 어쩔 수 없었으니까. 디자인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마감이 하는 거니까. 취업을 해야 했는데 대학원을 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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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보호구역의 교통법규가 강화되면서 나도 모르게 학교 앞이나 보호구역 지나기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행은 보통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루트로 가니 의도적으로 피하기 힘든 경우도 많았다. 얼마  상암동  신규 현장에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나게 됐다. 피하려는 데는 30km/h 느린 속도도 그렇지만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아이들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왕복 2차선의 폭이 좁은  가엔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도열해있었는데 커다란 잎을 가득 펼쳐 아늑한 베이지 톤의 색온도를 입힌 나무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느리게 진행되는 차량의 흐름은 30km/h 제한속도보다 느리게 흘러갔다. 운전을 하면서 주변 풍광을 바라보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 퇴근시간 해가 지는 강변북로에서 바라보던 여의도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연하게  안개 사이로 드리워진 나뭇가지들과 어슬렁 거리는  떼를 보려고 일부러 느리게 지나갔던 제주의 1100 고지 드라이브가 생각났다. 그렇게 느리게 가는 것이 주는 새로운 시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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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배우다 보면 교수님들과 선배 건축가들 모두 하나같이 그들의 자부심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지점이 있었다. '젊은 건축가'의 '젊은'은 도대체 몇 살인가? 에 대한 대답이다. 그들은(우리는) 입버릇처럼 '건축가로 데뷔하는 건 마흔은 넘어야지.. 그것도 빠른걸...'이라고 한다. 건축가란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책임자의 위치에 오르는데 오래 걸리는 것을 이렇게 자랑하듯 말함은 이 학문과 산업이 다른 것들보다 책임자의 자리에 오르기 어렵다는 방증이자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자신의 대단함을 직,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욕구로부터 출발한 말이기 때문이다. IMF 시대 이후 우리나라는 명예퇴직이란 단어가 만들어졌고, 젊은 나이에 퇴사를 강요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자리 잡은 시대적 흐름이었다. 그런 중에 마흔이 되어야 데뷔라는 말은 어찌 보면 일종의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바닥도 금세 시대가 바뀌었다. '젊은 건축가'는 이제 40대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젊은이들'이 건축가라는 직호를 붙이게 되었다. 그 사이에 낀 내 또래의 건축가들은 과거에 '젊은'이라는 단어가 붙을 시점에 그 단어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됐다. 과연 나는 '젊은'을 붙이고 까불거려도 되는 나이인가? '젊은' 건축가라기엔 민망하고 시니어 건축가는 아직 먼, 이제 막 '중년'을 시작한 건축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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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와 시간, 그리고 에너지의 관계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어떠한 지점에 도달하는 시간은 나와 지점 간 거리에 비례하고 이동하는 속도에 반비례한다. 즉,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높은 속도와 짧은 거리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동일한 거리를 이동한다면 그 일을 하는데 드는 에너지의 양은 속도나 시간에 관계없이 같은 양의 에너지가 든다 (열역학 제1법칙). 이것을 인생으로 치환해보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데 드는 에너지의 양은 빠르건 느리건 같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방향과 목표점이 정확히 있다면, 그리고 그곳까지 도달할 수 있는 양의 에너지가 있다면 언제고 우리는 도착하게 되어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에너지가 많으면 된다. 삶의 에너지는 무엇으로 생성될까? 육체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잘 먹어서 생성되는 운동에너지 말고, 마음이 동하여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정신적 에너지 말이다. 나는 정신적 에너지가 풍부한 삶이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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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이란 키워드는 친환경 에너지원을 대변하는 단어였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이 키워드는 '지속 가능한 삶' 등 다른 분야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스스로 꾸준히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를 갈망하는 시대이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정신적 무한 에너지원, 이것만 있으면 된다. '행복'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동기부여'라고 하기엔 너무 딱딱하다. 그냥 하루하루를 움직이게 하는 작은 '기쁨'이나 '유쾌함' 정도로 보면 좋겠다. 오늘 아침에 마신 잘 내려진 커피 한 잔이나 막히는 퇴근길에 보았던 한강의 노을, 자기 전 맥주 한 잔을 들고 보는 영화 같은 것들이다. 소모되지 않고 지속되는 윤택한 삶을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소소하게 자신의 주변을 기웃거릴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는 적당한 속도의 '자발적 서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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