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이 있다. 호주 출신 코미디언이자 음악가인 팀 민친(Tim Minchin)이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대학교에서 한 졸업 축사 영상이다. 다음은 해당 영상을 한국어로 번역한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p4xXZ5Jbdc
전부 좋은 내용이지만 그 중에서 내가 가장 감명 받은 부분은 처음의 두 가지 교훈이다. 즉, '꿈을 가질 필요는 없다'와 '행복을 좇지 말라'는 것이 그것이다.
첫 번째 조언을 내 식대로 하자면 '인생의 의미를 얻기 위한 장기적인 목표는 의미 없다.'로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정말이지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인생 계획은 커녕 10년 계획도 내 뜻대로 흘러간 구간이 단 하나도 없는 거 같다. 고등학생 때는 내가 심리학과에 입학할 줄 몰랐고, 심리학과 재학 중에는 내가 의사가 될줄 몰랐다. 의대 재학 중에는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될줄 알았다. 지금도 난 내가 앞으로 인생이 대충 이렇게 흘러갈 것 같다 내지는 몇 년 뒤에는 어떤 일을 성취해야 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들이 있지만 과연 얼마나 맞아떨어질지 모르겠다.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기 보다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따라 이리 저리 휘둘리는 물결이고 그 격류 속에서 내 의지는 조금이라도 내 뜻대로 방향을 잡아보려는 발버둥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발버둥 끝에 예상치 못한 지점에 도착하면 그 곳에는 내가 예상치 못했던 또 나름의 인생의 의미와 보람, 행복이 존재했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어떤 원대한 꿈이나 목표가 과연 필요할까? 필요하다면 과연 그것이 성취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다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을 뜻대로 흘러가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고 포기해야 할까.
무엇보다 원대한 꿈에 잡아먹혀 첫 발도 제대로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미대조차 진학 못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또 꿈이라는 것이 대개 인생 초창기에 설정되기 마련인데, 막상 그 시기에는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본인이 원한다고 생각한 것의 실물이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다보니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지나치게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버리고 그 길이 막혀버리면 좌절해버리고 만다. 완벽하게 이룰 수 없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완벽주의자의 모순이다.
팀 민친은 인생을 다 바쳐야할 거대한 꿈은 필요 없고 대신 단기적인 목표에 대한 열정적인 전념을 하라고 조언한다.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이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 뭘 하고 먹고 살아야 할까 고민된다면 나는 우선 그 아르바이트를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잘 해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그저 거쳐가는 한 지점으로 격하시킬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기회나 목표를 발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렇게 긴 인생을 살지는 못했지만 내 인생의 흐름을 좋게 바꾼 중요한 결정과 기회들은 내가 미리 계획한 대로 찾아왔다기 보다는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최선을 다했을 때 우연히 찾아왔던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런 기회들을 내가 원래 품고 있던 꿈 때문에 혹은 아직 품지도 못한 꿈 때문에 일부러 지나치거나 소홀히 한다면 그건 너무 바보 같은 일이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그들이 본인들의 일을 택하게 된 동기가 우연한 기회나 시행착오였던 것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두 번째 교훈, 행복을 좇지 마라도 비슷한 결이다. 영상에서 팀 민친은 '행복은 오르가즘과 같다'고 말한다. '신경쓸수록 멀어지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정의하기 조차 쉽지 않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과학자마다 철학자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장 단순하게 '기분이 좋거나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상태' 더불어 '불행하지 않은 상태'로 정의해 보겠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듯이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즉 불행의 모습은 거의 무한대로 다양하지만 행복의 모습은 정의는 다양해도 대개 비슷한 모습이다.
문제는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행복하도록 디자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듯이 우리는 우리가 정말 원하던 상황이던 원치 않던 상황이던 쉽게 적응한다. 즉 원하는 직장을 얻거나 복권 당첨같이 큰 돈을 얻어도 우리는 그 행복에 쉽게 적응하고, 가족의 죽음이나 본인의 장애 같은 커다란 불행이 찾아와도 우리는 대개 1~2년 정도면 적응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망가진 온도 조절 장치를 가진 에어컨이기 때문이다. 에어컨 온도를 24도로 맞췄다면 실내온도가 24도에 도달했을 때 작동을 멈추거나 출력을 낮춰야겠지만 우리의 행복 추구용 온도조절장치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24도에 도달하면 목표 온도는 22도 정도로 재설정된다. 그리고 도저히 에어컨 출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 올 때까지 무한히 반복된다.
이는 행복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아닌 수단이기 때문에 그렇다. 무엇을 위한 수단일까? 번식과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안타깝게도 현대 인류에게 더이상 생존과 번식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생존은 너무나 쉬워졌고, 번식은 그 의미가 크게 퇴색됐다. 마치 우리가 생존을 위해 단맛을 추구하도록 진화했지만 지금은 그 단맛이 너무나 얻기 쉬워졌기 때문에 온갖 내분비계 질환에 시달리는 것처럼, 우리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행복을 추구하도록 진화했지만 생존과 번식이 더이상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허무와 우울감에 빠지게 되었다.
따라서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본인을 행복하게 하는 일들을 추구하지 말고 원시 수렵채집 호모 사피엔스를 행복하게 했던 일들을 추구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즉, 비디오게임 술 섹스 포르노 돈 사치품 도박 쇼핑 소셜미디어 정크푸드 같은 즐거움들에 대한 과몰입은 단기간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건강하게 장기간 누릴 수 있는 종류의 행복이 아니다. 다행히도 이 분야는 연구가 아주 잘 되어 있다. '그랜트 연구' 등에서 말하는 행복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친밀한 관계(가족, 배우자, 친구) 유지 (특히 47세 이전에 만들어 놓은 인간관계)
2. 교육년수. 특히 평생 배우고 적응하는 자세.
3. 성숙한 방어기제
4. 금연(적어도 45세 이전에 금연)
5. 절주
6. 규칙적인 운동
7. 적당한 체중
학벌, IQ, 직업적 성공은 행복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결국 4~7번은 신체적 건강에 대한 이야기다. 2~3번은 정신적 건강에 대한 이야기이고. 연구에서는 가장 강력한 예측 변인이 1번, 즉 행복한 결혼을 비롯한 47세 이전에 만들어 놓은 인간 관계라고 한다.
즉 사람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서 가족,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가? 행복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내가 성취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들에 집착하기보다는 이 목록에 있는 리스트를 잘 챙겨보는 게 어떨까? 결국 이 리스트를 성취하려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하면서 현재에 충실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된다. 즉 행복이란 열심히 사는 것의 부산물이지 결코 목표는 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