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가족을 보고

영화 대가족을 보고

by 강뚜루마뚜루

아내와 빨래를 개고 점심 식사를 하며 넷플릭스로 대가족이란 영화를 봤다. 영화 자체는 그저 그랬고, 정자기증에 대한 묘사가 비현실적이며 윤리적으로 우려스러운 수준이기는 했지만 영화 기저에 깔려 있는 주제 의식이 나름대로 여운과 울림을 남겼다.


극중 김윤석은 고아로 자랐지만 대를 잇기 위해 핏줄에 집착하는 인물로 나온다. 반면 이승기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출가한 인물로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승기는 본인이 원치 않았던 정자 기증을 통해 400여명의 얼굴도 모르는 자녀를 두게 된 반면 김윤석은 영화 마지막에 혈연도 없는 고아를 16명이나 입양하여 대가족을 이룬다. 이는 고아였던 자신을 키운 것이 혈연으로 이어진 부모나 조상이 아니라 이 세상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일면식도 없는 핏줄 400여명과 인연으로 기른 16명의 자녀 중 어느 쪽이 진정한 가족인지 메세지를 던진다.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1. 생각해보면 내 유전자라는 게 나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살아있었다는 증거로 내 핏줄을 남기는 데 그렇게 집착할 필요는 없겠다.

2. 부모와 자식을 정의하는 것은 단순 혈연이 아닌 인연과 관계이다. 지금 내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나한테 태어나서 사춘기 전까지는 나에게 의존하겠지만 사춘기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좋은 친구로 지내려면 나도 애들한테 좀 잘해야겠다.


언젠가 내가 자식 몇 명을 낳아야 내 유전자 대부분이 후대에 남겨질까 궁금해져서 계산해본 적 있다. 수학적으로 100%는 불가능하지만, 1명일 때 50퍼센트, 2명일 때 75퍼센트, 그런식으로 5명이 넘어가면 95퍼센트의 유전자가, 그리고 7명이 넘어가면 99퍼센트 이상의 유전자가 후대에 전달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나는 아들 둘을 낳았고, 아마 여기서 멈추거나 어쩌면 한 명 정도 더 낳을 거 같다. 그렇다면 내 유전자의 12.5~25%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걸까?


그렇지 않다. 유전자 풀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인간이라는 한 종에 있는 모든 유전자의 총합을 일컫는다. 나라는 한 개체는 그 유전자 풀의 유전자 중 극히 일부를 독특한 조합으로 갖고 있는 개성적인 존재이지만, 내가 갖고 있는 각각의 유전자로 보자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 내가 미처 전달하지 못한 12.5~25%의 유전자도 나와 같은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들이 자손을 낳음으로써 유전자풀에서 번성하거나 도태되거나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핏줄에 대한 개념도 모호해진다.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수많은 유전자들 중 이것 조금, 저것 조금 하는 식으로 갖고 있을 뿐 내가 갖고 있는 유전자 중 나만의 유전자는 없다. 내 대에서 일어난 돌연변이 같은 게 있을 수 있지만 의미 없는 수준일 것이고, 설령 있다 해도 뭐 그게 내 이름이 새겨진 나만의 훈장 같은, 나를 정의하는 유전자라고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유전자로 정의한다면 내가 보유한 모든 유전자의 독특한 조합일 것이지, 어떤 단일한 유전자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모른다. 내 유전자에 이 세상에 오직 나만이 치유할 수 있는 독특한 질병에 대한 독특한 항체가 오로지 나에게만 있다면 모를까...


스토아 철학에서는 모든 인간을 세계 시민으로, 국적이나 인종,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동등한 존엄과 책임을 가진 우주의 구성원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사상은 모든 인간은 단일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는 현대의 코스모폴리타니즘으로 이어졌다.


나는 혈연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해서 아직 인류 전체를 세계 시민이자 나의 가족으로서 받아들이지는 못하겠지만 영화를 보고 그게 어떤 느낌인지 힌트를 얻은 기분이 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자로 살기≠부자처럼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