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닌 언제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낙원이 있을 거라는 환상
얼마를 모으면 FIRE하겠다는 사람들을 볼 때면 예전에 수강했던 강의의 강사님이 떠오른다. 아침 7시 첫강의를 시작으로 밤 12시까지 일하고, 식사는 조교를 시켜 포장해온 김밥 등으로 이동시간이나 강의 준비 시간에 때운다고 했던 그. 결혼은 하지 않았고 그 당시에는 연애도 하지 않았으며 그가 대충 암시한 소득에 따르면 상당한 고소득자였다. 그는 강의 중간중간 잡담 시간에 왜 지금 자신이 이렇게 고소득을 올리면서도 고통스럽게 사는지, 자신의 꿈은 무엇인지 말하곤 했다. 그의 꿈은 스위스에 이주해서 시베리안 허스키 여러 마리를 키우며 사는 것이었다. 그는 꿈을 이루기까지 필요한 금액이 머지 않았다고 말했다. 몇 년 안에 은퇴할 것 같다고. 가끔 생각나 그 강사님의 이름을 검색해 본다. 방금 전 또 검색해 보니,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나 역시도 비슷했다. 꿈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내가 기다리고 고대하던 그런 날이 올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학교에 가면, 내가 원하는 직업을 얻으면, 결혼을 하면... 크고 작은 성취가 있었고 좌절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내가 원하던 그 정의조차 모호한 행복한 시기는 오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까지 내가 목표로 삼은 모호한 미래의 목표는 FIRE였다. 내가 필요한 생활비를 계산하고 이를 역으로 추산하여 원하는 생활비를 자본 소득으로 얻기 위한 충분한 금액 계산했다. 거기에 안전 마진을 조금 붙이고, 그 금액을 모으기 위해 한 달에 저축해야될 금액, 주식시장 연평균 복리 및 물가상승률를 고려할 때 저축해야될 기간 따위도 계산했다.
그러다 이는 내가 평생동안 해왔던, 존재하지 않는 낙원 꿈꾸기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크고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해왔고, 성취해왔고, 그 성취를 누리며 지금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성취 이후 기다렸던 낙원은 없었다.
영화 소울에 나오는 대사를 종종 생각한다.
- 이날을 평생 기다려왔는데. 내 생각에는 뭔가 이것과는 다를 거라 생각했어요.
- 한 젊은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게 있지.
그 젊은 물고기는 늙은 물고기에게 헤엄쳐가서 이렇게 물었어.
"'바다'라고 하는 것을 찾고 있는데요?"
"바다?", 늙은 물고기가 말했어,
"네가 있는 여기가 바로 바다야!"
"여기요?", 젊은 물고기가 말했지,
"여기는 그냥 물이잖아요? 제가 찾는 건 '바다'라고요"
나는 스토아 철학과 불교 철학, 그리고 마음챙김을 인생의 지표로 삼아 살고 있다. 이 세 사상을 요약하자면 지금 현재를 온전히 사는 것, 그리고 내가 통제할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반성을 하고, 내 본능과도 같은 불안성향을 직면하고 내려놓은 뒤, 현재를 온전히 살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그렇지만 존재하지 않는 낙원 꿈꾸기란 워낙 중독적이고 재밌어서 지금도 재미로 계속 추구하는 중이다. 요즘은 AI 기술혁신이나 우리 아이들이 큰 뒤의 미래를 상상하고 그에 맞춰 계획을 짜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 현재가 아닌 미래의 언젠가 있을 낙원 따위는 없다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