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 남은 너에 대한 건 거의 다 지웠는데, 지우지 못한 게 몇 가지가 있어. 너는 없지만 너와 함께 했던 장소들과, 너의 시선으로 담은 나.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의 마지막이었을 통화가 녹음된 메세지. 그리고 별이 뜬 날 우리가 함께 했던 이랜드 케이블카에서 본 야경과 우리의 대화가 담긴 영상. 이렇게 얘기하니까 생각보다 많은 걸 남겨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외에 수천수만 개의 사진을 지웠어. 그 시간들을 지우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 그러고 며칠 전 아주 우연히 삭제되지 않은 너의 옆모습이 담긴 사진 하나를 발견했어. 그걸 보고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얼마나 더 울어야 괜찮아 질지 아직 잘 모르겠어.
어떤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말야.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어. 너의 목소리가 담긴 우리의 통화내용이 담긴 메세지 하나가 남았더라는 얘기. 그 얘기를 하다가 핸드폰을 뒤져 그 파일을 찾아 맨 처음과 맨 끝을 들어봤어. 차마 중간 부분은 듣지 못하겠더라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처음에 너는 다를 달래는 것으로 시작해. 우리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 내가 너에게 다 맞추는 게, 내 의견을 내지 않고 뭐든 다 괜찮다고 말하고, 너의 말이라면 다 좋다고 하고, 너랑 함께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좋다고 말하는 내가 너는 싫다고 했어. 그 부분이 우리가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헤어지게 되는 계기가 될 거라고 했어. 서운하고 싫은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율하지 않으면 우리는 금방 헤어지게 될 거라고.
니가 봤을 때 분명 우린, 곧 헤어질 거라고.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너랑 함께 하는 일이어서 좋았고, 너이기 때문에 다 괜찮았어. 내가 너에게 맞추려고 한건, 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기 때문이었어. 거짓말만 아니면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게 너에게 그렇게 불편한 일인지 몰랐어. 나는 너랑 하는 거면 뭐든 좋았어.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함께인 것만으로도 행복했어.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나서 듣는 니 목소리가, 보고 싶다고 시간이 되면 며칠씩이고 와서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니가 너무 좋았고, 고마웠어. 장거리였지만, 장거리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너는 내게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하려고 애썼고, 나는 충분히 행복했어. 내가 스케줄 근무로 시간이 나지 않아도 어떻게든 짬이 나면 너를 볼 수 있게 해 줬고, 그 시간이 귀했어. 너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기 때문에,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어. 그래서 니가 하자는 대로 했고, 너가 하고 싶은걸 하자고 했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었어. 그런 내가 너는 불편하다고 했지.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니가 먼저 하기엔 이미 나쁜 사람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겠지. 그래서 내 입에서 그 얘기가 나오길 바란 거겠지. 그날에 나는 맘이 편했을까 라는 노래 가사에 이런 얘기가 나와. 어찌나 가사가 나를 찌르던지.
다신 안 보겠단 각오로 니가 못한 숙제 한 거잖아.
나를 떠나는 이유가 너는 필요했던 거니까.
내가 그 이유를 만들어줄게.
우리의 마지막이었을 그 통화에서 도대체 너는 내게 몇 번이나 헤어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걸까. 그 말을 내 입에서 들으려고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돌려 말했을까. 나는 또 얼마나 아팠으면 마지막에 울면서 소리 지르면서 그렇게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지잔 얘기를 했을까. 다신 안 보겠단 각오로 니가 못한 숙제를 한 거란 얘기가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아서 그래서 그 문장이 이렇게 또 나를 시리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를 떠나는 이유가 너는 필요했던 거니까. 그래서 너에게 다 맞추는 내가 불편하고, 그런 나 때문에 우리가 곧 헤어지게 될 거란 이야기를 무려 한 시간이나 내게 한 거니. 결국엔 우리가 헤어질 이유를 내가 만들어주고 전화를 끊었더라.
너랑 만나면서 처음부터 한 약속이 있었어. 정말로 헤어질 게 아니라면, 절대 헤어짐이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말자고. 몇 번의 다툼이 있을 때마다 너는 습관적으로 그 단어를 입에 올렸고, 그런 너를 보고 헤어지자 마음을 먹었다가도, 니가 없을 나를 생각해서 정말로 헤어질게 아니라면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말아 달란 말을 울면서 뱉었지. 다신 하지 않겠다는 너의 말에 또 나는 알면서도 속아줬어. 근데 술만 먹으면 너는 또 헤어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곤 했어. 솔직히 너를 바꿀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그게 너의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 막히게 아팠어. 그래도 어떻게든 되돌리고 싶었고, 그러려고 애썼는데. 그날은 참을 수 없었나 보더라.
나를 더욱더 사랑해줬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다면 행복했을까
참 우습지. 아직도 가끔은 그날로 되돌리고 싶단 생각을 해. 다신 보지 말자는 말을 하기 전으로. 우리의 문장에 마침표를 찍기 전으로. 아니 처음부터 너를 만나지 않았으면 괜찮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너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 그러면서도 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 참 모순덩어리야.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쪽으로도 정리가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아.
너에게 맞추는 내가, 너랑 함께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좋다고 말하던 내가. 너의 잘못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려고 애쓰던 내가. 그런 내가 불편해서. 그게 내 잘못이어서, 우리가 헤어지게 될 거라는 말을 하던 너를 더 이상 어떤 말로 붙잡을 수 있었을까. 그날에 나는 얼마나 아팠을까. 지금도 그 말에 숨이 막히는데, 그때의 나는 어땠을까. 오늘 처음으로 든 생각이 있다면, 그날의 나에게 미안하다는 거야.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사람에게 저런 말을 듣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는 거야. 헤어질 이유가, 핑계가 필요했던 너에게 그 이유를 만들어 주고, 우리가 만난 시간보다도 더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너를 생각하면 아픈 내게 너무 미안하다는 거야.
이 노래가 너무 내 얘기 같아서, 나를 아는 것 같아서. 나를 노래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아마도 이렇게 닿지 않았을까. 또 한 번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언제쯤이면 괜찮아질까. 괜찮아지긴 하는 걸까.
내가 이 얘기들을 이렇게 문장으로, 글로 써 내려가는 이유가. 언젠가는 니가 이 이야기를, 내 이야기를 들었으면, 읽었으면 하는 마음 이어서야. 언젠간 너의 귀에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들렸으면 좋겠어. 전해지길 바라, 아직까지는. 언젠가는 지금의 이 이야기도, 지금의 이 마음도. 지나가는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