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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Feb 06. 2021

우산

코끝에 심장이, 따뜻한 품이.

비 오는 날 종종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저는 혼자 우산을 쓰더라도 젖는 게 싫어 웬만하면 보통 우산들보다도 훨씬 큰 골프 우산을 들고 다닙니다. 일반 우산보다 크거든요. 비가 처음부터 오지 않거나, 예비로 들고 다니는 우산은 3단 우산을 들고 다닙니다. 처음부터 비가 오는 날에는 큰 우산을 들고 다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만나면 우산을 하나로 함께 쓰는 것이 좋지만, 작은 우산을 들고 만나는 날에는 저는 각자의 우산을 쓰기를 바랐어요. 비에 젖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거든요. 근데 때마다 그 사람은 제게 서운해하더라고요.


"연인은 우산을 나눠 쓰는 게 아니야. 어깨가 조금 젖으면 어때, 우린 같은 우산을 써야 해. 무조건이야. 무조건. 알겠지? 우리는 연인이니까. 사랑하는 사이니까. 내 어깨 좀 젖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우산이 좁으면 우리가 더 가까이 붙어서 걸을 수 있잖아. 그러려고 비가 오는 거야. 우리 좀 더 붙어 있으라고."


우산을 각자 쓰고 가자는 말을 할 때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당신의 어깨가 다 젖는 줄 알면서도, 제가 젖을 까 봐 제 어깨를 조금 더 꽉 끌어안고, 제 쪽으로 우산을 기울인 채로 걸어요. 당신이 감기에 걸리는 건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그렇게 안아주고도 제가 감기에 걸릴까 봐 내내 걱정하던 사람이에요.


저는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 손이 식으면 곧장 몸살감기를 심하게 앓곤 했어요. 평소엔 겨울에도 손에 아지랑이가 필 정도로 손이 뜨겁거든요. 인간 손난로라 불릴 정도로 뜨거워요. 여름엔 다들 피하고, 겨울엔 다들 반기는 손을 가졌어요. 근데 그 손이 식으면 한동안 정말 심하게 감기를 앓곤 하는데, 그 때문에 그 사람은 내내 절 더 신경 썼던 것 같아요. 그렇게 걱정이면 서로가 젖지 않게 우산을 따로 썼어도 됐을 텐데. 왜 그랬을까요. 왜 그렇게까지 했던 걸까요.


그 사람의 말이 맞아요. 우산을 하나로 나눠 쓰면 조금 더 가까이 붙어서 걸을 수 있어요. 사실 그래서 좋기도 했고요. 괜히 설레기도 했어요. 키가 머리 하나 차이로 큰 그 사람이 좁지도 않은 내 어깨를 큰 키와, 긴 팔로 끌어안는데 설레지 않을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 사람 말대로 가까이 걸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정말요. 참 따뜻했거든요. 제 취향인 섬유 향수를 선물했는데, 그 향이 포근하게 올라오면서 정말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코끝에 심장이 닿는 기분이었어요. 그렇지만 내내 그 사람이 감기에 걸릴까 걱정되기도 했어요. 설레면서도 미안했어요. 꽤 오랜 시간 만나면서 한 번도 우산을 따로 쓴 기억이 없네요. 이렇게 시간이 지나도 내내 비 오면 우산 하나로 나눠 쓰고, 안겨 걸었던 기억만 남아있어요.


그래서일까요. 비가 오면 그 사람이 또렷해져요. 그 사람 어깨가 젖지 않았으면 해서 조금 더 큰 우산을 사기 시작한 게 사실 골프 우산이었거든요. 꼭 우산 하나로 나눠 써야 한다는 말에 조금 더 큰 것을 찾다 보니. 그런데 이제는 그 우산이 필요 없어졌어요. 그래서 내내 3단 우산만 쓰네요. 우산이 작아도 충분하거든요. 비가 와도 이제는 한 우산 아래서 안아 줄 사람이 없어요.





코끝에 닿던 심장이, 따뜻한 품이.

없어요, 이젠.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영영.

흐릿해지는 그 사람을 자꾸 또렷하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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