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다.

이것 또한 어차피 지나가겠지란 안일한 생각으로.

by maudie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면 다들 저 앞에 이미 한참을 가고 없는데 나만 늘 같은 걸음으로, 아니 걸음도 채 떼지 못하고 바닥에 붙은 발만 원망하고 서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나를 던져놓고 모르쇠를 시전하고 있다. 나도 안다. 내가 지금 참 한심스럽다는 거. 10년이 넘게 일을 하면서 남는 것 없이 오히려 더 상황이 안 좋아진 채로 이렇게 산소를 낭비하고 있다는 거.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이 나이에 부모님 그늘 아래서 내내 쉬고 있다는 게 얼마나 한심한지. 한 번도 이렇게 오래 쉬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전에도, 그 후에도. 아무리 오래 쉬어도 세 달을 못 쉬었다. 그렇게 쉴 여력도 없었고, 그럴 성격도 못되었다. 늘쌍 불안함에 갇히고 누군가에게 치이고 내 자리가 없어질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일을 해야만 살아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좋아하고 바깥 활동을 좋아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길 좋아하던 활동적이었던 내가. 일을 멈추고 근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점점 더 피폐해지고 점점 더 곪아진다. 집에 있는 시간이 자유롭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귀찮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외로워 못 버티던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외롭지 않게 되었다. 성가신 일이 되었다. 왜 그렇게 까지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온 머릿속을 장악했고, 몸은 점점 더 나약해졌다. 게을러져 버렸다.


이런 내가 이해가 가고 안쓰럽다가도, 이해가 안 가고 한심하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지 나도 나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너는 언제까지 이럴 거니. 집구석에 처박혀서 아무도 안 만나고 아무것도 안 하고 고작 답답해서 나가는 게 아파트 단지 안에 산책 정도라니. 살아오면서 네가 이랬던 적이 없는데, 일은 왜 안 하고 싶고 왜 아무도 안 만나고 싶고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니라고. 답답하다. 안다, 부모님도 지금 상당히 나를 답답하게 여길 거라는 거. 말로는 그냥 쭉 내가 집에 있었으면 한다고 이야기하시지만, 이러고 있는 내가 어색할 거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사실 부모님은 내가 바깥을 돌아다니고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별로 탐탁지 않아하신다. 그저 가만히 앉아 공부나 좀 더 하고 책 읽고, 그렇게 내내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일 따위에 연민을 가지지 말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으면 한다고 말이다. 어느 정도 이해를 못하는 부분은 아니다. 내가 겪어온 그간의 일들이 전혀 아직 괜찮지 않다는 것을 이미 나도 알고 있기에.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나약해 빠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으로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답답한 것일 뿐.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뭐고, 싫어하는 것을 뭘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뭘까. 도무지 답이 없는 나날들이 하염없이 흐르기만 하고 붙잡을 용기도 없는 나는 또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멍하게 있다. 이것 또한 어차피 흘러가버리겠지란 안일한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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