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피력하는 일

그래도 짙은 향이 남는 사람이기를.

by maudie

누군가의 마음에 나를 피력하는 일. 어쩌면 쉬운 일일 수도 있고,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들을 오히려 피하려 하면 할수록 나에 대한 오해가 짙어질 것을 이미 알기에 나는 이제 와서 그것들을 멈출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는 일에 소홀해지면 상대도 역시 나에게 소홀해질 것을 안다. 물론 내 생각과 언제나 반대인 경우도 있다. 나에 대한 것들을 상대에게 피력했을 때, 관계가 오히려 끊어질 수 있음 역시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 끊어질 관계라면 짙어지기 전에 끊어지는 게 외려 나에게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여 오늘도 나는 나를 피력하는 일을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단순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리고, 피하는 일보다 어쩌면 나의 진실과 마주하는 일이 훨씬 단순하고 쉬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로 인해 멀어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가끔씩 나를 뎅 - 하고 후려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이 이렇게나 심플해질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도 그것은 더 심플했다.


어차피 관계란 상호적인 것이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호감이 한쪽이라도 변질되는 순간 정리된다. 깔끔하게 혹은 지저분하게. 상대에 대한 그간 쌓아온 정의 깊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인성은 드러나게 되는 법이지. 그래서 정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인간관계에 관한 맺고 끊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지므로.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줄 알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 어쨌든 간에 정리되기 전 나는 나를 그 사람들에게 피력하겠지. 선택의 순간들을 나열할 때도 역시.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지만 언제나 그 선택에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더라. 뭐, 그렇다고 내가 잘났다는 말이 아니고. 그저 나의 실제를 드러냈을 때, 얼마나 투명하게 받아들이냐는 상대의 선택이라는 얘기다. 그 뒤의 지저분함과, 깨끗함 역시 상대가 선택하겠지만. 물론 나에게 누군가가 자신에 대한 피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나 역시 여러 가지의 선택지를 앞에 두고 고심을 하겠지. 결국 그 덕분에 나도 투명해지는 거라 생각한다. 웬만하면 관계를 유지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쪽으로 선택하려 애쓰는 것 역시 그런 연유다.


꽃이 핀다. 새로운 봄이 올 때 온 세상을 뒤덮는 목련 향처럼 관계에도 짙은 향이 남길 바라는, 그런 봄이 온다. 투명해지면 해질수록 약해지는 게 관계라는 것쯤은 알지만, 그래도 그 관계에 짙게 내가, 아니 우리가 남아있었으면 한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애써 온 시간이 얇은 유리알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저 나의 가치마저 얇아져 곧 부서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도 여전히 나는 짙은 향이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억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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