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이상한 제안
요즘 이직을 준비 중이다. 일을 쉰 지 8개월이나 지났고, 받던 실업급여 기간도 모두 끝이 났다. 이제 완전한 백수가 되었다. 그간은 조금 여유로웠다면, 이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그래서 얼른 이력서를 새로 업데이트를 하고 수정을 해뒀다. 그리고 비공개였던 이력서를 공개로 전환하고, 서치를 하고 이력서를 넣는 동안 기업에서 내 이력서를 볼 수 있도록 설정해뒀다. 감사하게도 많은 연락이 왔다. 하루에 5건의 통화는 우스웠던 며칠이었던 것 같다. 물론, 한 3일 정도 바쁘게 전화기가 울리더니 지금은 오지 않는다. 어제 마지막 통화 이후로 통화를 하지도, 이력서를 새로 제출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며칠 내내 핸드폰이 바쁘게 울리는 동안 제안받은 회사들은 90프로가 영업분야였다. 내가 가장 자신 없는 분야. 아이러니하게도 따지고 보면 경력이 모두 영업이었다. 판매직도 사실은 영업부서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제일 자신이 없으면서도, 늘 해왔던 일. 그것이 영업이었지만, 앞으로는 하고 싶지 않은 일 역시 영업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근 10년을 해오다 보니 이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누군가에게 제안을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기까지의 그 시간이 피가 마른다.
물론, 내가 해왔던 영업의 분야는 연락 오는 회사와는 다른 케이스지만, 다를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여태 해왔던 영업은 손님이 먼저 원해서 나를 찾는 것. 그래서 내가 맞춰서 서비스를 하는 것. 물론, 간간히 추천을 하거나 1개를 판매할 것을 2개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개인적인 실적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강요는 없었다. 인센티브와 같은 것들에 압박도 물론 없었다. 하지만 관리자가 된 이후로는 지점별로, 팀별로 실적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늘 탑 3 안에 들어가게 유지를 했기 때문에, 본사에서 크게 압박을 할 수 없었다. 지점의 규모도 차이가 있었으므로, 실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늘 1등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것 같다.
어떤 매장에서 근무를 해도, 늘 그래 왔다. 팀장이나 점장으로 불리게 되는 순간부터 모든 압박은 나에게만 돌아왔다. 직원들을 압박하는 것은 내가 사전에 차단했다.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면, 매출로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완강히 거부했다. 싸워 이겼다. 물론, 직원들은 덕분에 편하게 맡은 일만 하면 되었고, 직원들의 부담감을 줄여 매출을 올리는데 힘쓰게 했다. 아주 효과적이었다. 직원이 잠재적 고객이라는 가장 큰 부분을 절대 간과하지 않기 위해 다름대로 애썼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보답하듯 직원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지인들을 고객으로 맞이했다. 그렇게 점점 더 효과를 봤던 것 같다.
운영방법에 효과가 있었고, 매출에도 실적에도 분명한 성과가 있었지만, 이 역시 영업이지만, 영업이라고 이야기 하기 애매했다. 그리고 수많은 경력 중 내가 유독 약했던 진짜 영업. 아주 잠깐 서서 일을 하고 매일 다쳐가며 일을 하는 데에 질려 직종을 변경하고자 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사무직 같은 일에 영 젬병인 나는 가장 비슷하면서 몸을 쓰지 않는 일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전화로 서비스 업무를 하는 일이었다. 가지고 있는 경력이 꾀나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나는 본사로 입사를 했고, 교육과 시험을 통과해 내 자리가 생겼다. 하지만 영업이라는 게 사실 사람을 상대를 하는 일이다 보니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처음부터 영업을 하기에 무리가 있었던 성격 탓에 팀장님은 내게 고객에게 고객이 알지 못하고 받지 못했던 혜택들을 연결해주는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인센티브는 상관이 없었고, 그저 오래 일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터라, 그 제안에 응했고, 영업팀이었지만 나는 고객이 인지 하지 못하는 할인 혜택을 연결만 해주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전화만 연결되면 온갖 욕설과 협박을 당했던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은 정말 20통 연결되면 그중 1명 정도고 나머지는 욕을 하거나 협박을 하거나, 냅다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다. 그리고 간간히 변태 같은 사람도 있었다. 개인적인 연락처를 묻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돼서 나에게 전화 공포증이 생겼고, 연결음이 기본음이나 새소리만 들려도 기겁을 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새소리 나 기본음이 연결음인 고객의 거의 대부분이 악성 민원 고객이었고, 어디서 어떤 사기를 당했는지 알 수 없으나 욕하고 소리를 지르면 해결되는 줄 알고 있었다. 출근을 함과 동시에 물 말고는 어떤 것도 삼키질 못하고, 물만 마셔도 다 게워내는 수준이 되었다. 푸석푸석 해지는 것을 넘어서 거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넋을 잃고, 점심시간에 링거 맞고 기절할 듯한 몸으로 억지로 일을 하는 것을 반복하다 결국 퇴사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렇게 무례한 일들을 당하고 나니 영업에 대한 긍정이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경력의 대부분이 영업팀이었고, 종일 영업에 대한 제안만 와서 지쳐있었다. 제안이 와서 거절하는 영업은 전화영업이나, 부동산, 보험 같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긴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도전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나마 해온 경력과 비슷한 곳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처음에 젊은 목소리의 남자분이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시기에 꼰대는 아니겠구나, 같이 일하면 참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보통, 서비스직에 관련한 면접 제안은 길게 하지 않는데, 이 분은 이야기를 일부러 더 길게 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게 이야기를 했다. 보통 서비스 직종에서 면접 제안을 할 때에는 매장명과 매장에서 하는 업무 그리고 근무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보통 급여도 면접을 보게 되면 면접 자리에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본인들도 바쁘기 때문에 면접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고 면접 시간과 장소를 이야기하고 전화를 바로 끊는다.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사람을 고용할 때도 똑같았다. 그 사람이 아니어도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고, 어차피 면접 제의를 한 명에게만 하는 것도 아니기에, 면접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고 보통, 나머지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다. 면접에도 오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굳이 상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분은 조건과 근무내용을 먼저 이야기를 하고, 면접 제의를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출근을 하길 바라는 듯한 뉘앙스로 이야기했다. 처음 있는 경우라 당황스러웠지만, 참 친절 한 분이라고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근무조건과 급여와 같은 부분들이 나쁘지 않았다. 주문도 내가 직접 받는 것이 아니라 키오스크를 통해 받는 것이고, 테이블 간단히 정리하는 것 외에는 관리업무를 하는 것이었다. 업무내용이 나쁘지 않았다. 근무시간도 나를 혹하게 하기에 좋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 풀 근무지만 근무시간이 매우 좋았다. 너무 일찍도 아니고, 너무 늦게도 아니어서 이만한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출퇴근 거리가 생각보다 너무 멀었고, 버스를 오래 타지 못하는 나로서는 퍽 난감했다. 전철이 없고, 버스를 타야 하는데 왕복 3.5시간이라니. 불편한 티를 내면 보통은 생각해보고 연락을 달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분은 계속 꼬리를 물었다.
쉽게 전화를 끊을 수 없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바람에 내내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 사시나요?"라는 질문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목소리 톤이 낮아지고 소리가 작아졌다. "아.. 그러면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네요....?" 그 말에 당황스러웠다. 내 나이 서른둘인데, 내가 일을 하러 가는데, 그것도 야간도 아니고 10시부터 8시까지 근무인걸.. 왜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어떤 걸 어필하고 싶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필을 했다.
"저는 여기 근처 30분 거리에 회사를 하나 운영하고 있고요, 제가 교육도 다 해드리고, 사장님처럼 운영하실 분을 찾는 거예요. 그리고 근무가 주 6일이지만, 바쁜 일이 있으면 제가 나오면 되고, 그거는 급여에서 제하지 않을 거예요. 대신 물론 제가 바쁘면 근무를 연장해주셔야 하고요. 아, 그 부분은 당연히 수당 드립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귀찮아질 수도 있어요. 저는 여기 근처 30분 거리에........" 반복이었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내내 "아.. 저 그런데 거기에 전철은 없잖아요, 그렇죠.. 아.. 주 6일에 거리가 좀.."이라 이야기를 했지만, 상대는 끊을 생각이 없어 보였고, 곧이어 내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가 들렸다. " 아, 저 올해 40이에요 ㅎㅎ" 이 말에 갑자기 없던 공포가 느껴졌다. 면접 제의를 하는 데에 이렇게 길게 통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부모님과 함께 사냐고 묻더니 갑자기 나이를 이야기를 한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네...?" 하고 짧게 답했고, 곧이어 그는 "아 ㅎㅎ 저 올해 이제 막 40 됐어요 ㅎㅎ 궁금하실까 봐 ㅎㅎ"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게 지금 무슨 소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이력서를 넣은 곳이 아니라, 내 이력서 공개된 것을 보고 먼저 연락이 온 거였고,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도 무시하고 계속 어필을 하더니, 부모님과 함께 사느냐는 질문에 이어 묻지도 않은 본인의 나이를 갑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등골이 오싹했다.
그리고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자취를 하게 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면서 부모님 댁에서 가까운 곳으로 직장을 알아보던 때가 있었다. 그때 대중교통으로는 이동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한 매장에서 나에게 면접 제의가 왔고, 아니지 여기도 면접 제의가 아니라 바로 출근을 하길 원했다. 그리고 굳이 사장 본인이 출퇴근을 시켜준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지 않은데 굳이 본인의 집과 정 반대편인 우리 집을 출퇴근을 시켜주겠다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에 공포가 엄습해 바로 거절을 하고 자취방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결국 부모님 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자취방 인근에서 다시 일을 구했다. 그 날, 그 장면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이력서에 내 개인정보도 다 적혀있으니 괜히 쓸데없이 무서워졌다. 세상이 흉흉하기도 하고, 그런 비슷한 일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조금이 아니라 매우 공포스러웠다. 나는 더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통편을 알아보고 다시 생각해보고 전화를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친구 몇 명에게 지금 내가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이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다 끝내기도 전에 친구들은 급발진했다. 온갖 욕설이 날아왔다. 뭐 그런 경우가 있냐고. 친구들이 난리가 났다. 당장 차단하라고.
차분히 생각을 해봤는데, 일단 내가 다시 연락 주겠다고 했으니 이대로 끝나면 오히려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분은 정말 악의 없이 행동했을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냥 지나치기에 너무 소름 끼치게 무서웠으므로. 나는 바로 문자를 했다. [ 안녕하세요. 우선 면접 제의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왕복으로 거의 4시간을 출퇴근하는 일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연락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식의 문자를 보냈고, 바로 답장이 왔다. 알겠다는.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었다.
갑자기 멘털이 와르르 멘션이었다. 그래서 나는 멍 하게 있다가 눈 앞에 보이는 미지근한 맥주 캔을 땄다. 맥주 캔을 따자마자 마시지도,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벌컥벌컥 긴 캔을 반 캔이나 꿀꺽꿀꺽 마셨다. 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건데,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맥주를 마저 마시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은 이력서를 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기분이 묘하고, 이상한 생각들에 사로 잡혀 내내 무서운 느낌이 들어 나는 털어버리려 산책을 나갔고, 세 시간을 내리 걸었던 것 같다. 추위에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걸었다. 콧물이 줄줄 나기 시작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날 밤 쓸데없는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공개 이력서 한 장이 주는 파장이 이만큼이나 크다니. 내가 오해하는 거라면 정말 죄송한 일이지만, 오해가 아니라면 섬뜩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부디 오해였길 바란다. 만약, 오해가 아니라면 같은 경우를 겪는 이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