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꽃이 피는 계절이 왔다. 벚꽃이 지는 아쉬움이 채 가기 전에 배 꽃이 예쁘게 피었다. 배 꽃을 가까이할 일이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아파트 단지 근처에 배 농사를 짓는 곳이 있었다. 그래서 매년 하얗게 피는 예쁜 배 꽃들을 만날 수 있다. 시골에나 가야 볼 법한 그런 것들이 근처에 있어서 제법 재미난 일들이 많다. 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배꽃이 생각보다도 훨씬 예쁘고 매력적이다. 벚꽃보다는 조금 크고 뭔가 선명하고 단단한 느낌이다. 생김새는 크게 다른 부분을 모르겠다. 벚꽃도 매화도, 배꽃도. 생김새가 꾀나 닮았다.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예쁜 것 까지.
답답한 마음에 산책을 나갔다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꽃봉오리도 겨우 맺혀 있던 배꽃이 활짝 피어있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서 한참을 황홀한 듯 들여다보았다. 왠지 모를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저 아이들은 저렇게 꽃을 예쁘게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애썼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스치듯 들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 나무도 계절에 맞춰 꽃도 피고, 싹도 피우고, 열매까지 만드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제대로 하는 게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취업을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내내 부정적인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잔뜩 예민한 중에 이상한 일을 겪어서 인지. 날이 갈수록 답답함과 불안함. 거기에서 오는 조급함에 내가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그 생각들을 떨쳐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산책을 마저 하기로 하고 발을 옮겼다.
온 지천에 하얗게 조팝나무가 꽃을 피우고 향을 풍기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 기분 좋은 살랑바람에 흔들리는 하얗게 핀 조팝나무 의 꽃이 풍기는 향기가 내내 기분 좋게 해 줬지만, 마음 한 구석은 편하지 않았다. 내내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했다. 기분이 널뛰는 동안 논과 밭이 보였고, 엄마랑 사이사이 고랑으로 들어가 나물을 뜯었다. 고들빼기도, 돌나물도, 미나리도. 신기하게도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이 자라는 것 같았다. 분명 일주일 전쯤에도 한 봉지 가득 뜯었던 것 같은데.
한 참을 아무 생각 없이 논과 밭 사이를 거닐다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뜯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원체 다리가 좋지 않은 터라 쪼그리고 앉아있었던 것이 조금 고되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잡생각을 없애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겠다 싶을 정도로.
미나리를 뜯고 있는데, 아주머니 두 분이 다가와 물었다. " 오 ~ 벌써 미나리가 나와요? 많이 뜯었어요? 미나리 어디 있어요?" 이걸 들은 무뚝뚝한 우리 이여사는 " 별로 안 뜯었어요. 잘 없네요."라고 하고 다시 미나리 뜯는 일에 집중했다. 돌미나리들이 아주 작게 여기저기 한가닥씩 올라와 있었고, 아주머니 들은 미나리를 뜯으면 겉절이나 해 먹어야겠다면서 깔깔거리더니 씀바귀를 캐러 간다며 사라졌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참 별 것 아닌 일에 웃음이 나왔다. 그냥 그저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면서 툭 내뱉은 말들이 왠지 정겨운 기분이었다. 사실 아주아주 어렸을 때에 살던 아파트 근처는 다 논과 밭이었고, 계절에 따라 할머니와 나물을 캐거나, 밤을 줍거나, 메뚜기를 잡는 일을 하러 따라다니곤 했다. 그런 것들을 하면서 할머니랑 놀이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더 재미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릴 때 기억들 때문이었는지 왠지 정겹고 내내 히죽거렸다. 덕분에 잡생각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물을 뜯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면서부터 고민과 걱정은 다시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봄이 가기 전까지는 갑갑할 때마다 나물을 뜯어야겠다. 잠깐이지만 그만한 힐링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