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내내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무언가를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여러모로 재취업을 준비하는 동안에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것 같았다. 사실, 최대한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재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내가 10년여의 시간 동안 해왔던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다른 분야의 경력은 하나도 없는 주제에 나이만 많은 채로 취업시장에 뛰어든 것이니까. 사실, 직종을 바꾸기 위해 자격증도 따고 새로운 공부도 했어야 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어떻게든 피하려고만 했다. 결국은 제자리걸음조차도 못하고 후퇴해버렸다.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내내 피해왔던, 경력이 있는 일들을 다시 해야 하나에 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차마, 그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아서 피해 온 시간이 벌써 9개월이 되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어떻게든 다른 것을 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쉬어보는 게 처음이기도 하고 정말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물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참 지독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여태 해왔던 일들에 대해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일이 좋았으니, 잘 맞았으니 비슷한 일을 10년이나 해왔던 거겠지. 재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기도 하다.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고객응대에 관한 것도 다시 시작하면 자리를 잡을 수는 있겠지. 다만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릴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분들의 마인드나 책임감이 따라오지 못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인 것도 내가 다시 그 직업군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에서 배제할 수 없겠다. 급여가 밀리고, 4대 보험이 체납되고. 심지어는 일을 그만둔 지 9개월이 지나는 이 시점까지도 그 무책임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4대 보험이라는 것은 내가 50% 사업주가 50%를 납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월급에서는 당연히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가지고 갔다. 다만 그것을 사업장에서 꿀꺽했다는 거다. 그게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 회사를 퇴사를 하고 재입사를 한 것이었는데, 퇴사 전에도 몇 번이나 4대 보험 독촉장이 날아왔었다. 독촉장은 6개월에 한 번 날아오는 건데 그걸 두 번 세 번 받았다고 한다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업장이 그랬다. 4대 보험이 체납되거나, 월급이 체불되거나. 하다못해 갑자기 폐점을 통보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래도 본점과 지점이 여러 개가 있는 곳에서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브랜드의 각각의 매장마다 신고한 회사의 이름마저 다르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름만 같은 셈이다. 같은 회사라는 간판만 가지고 있을 뿐. 아아, 가맹이랑은 전혀 다르다. 가맹은 같은 사업장에 투자자가 다른 형식이라면, 내가 말하는 것은 아예 회사 자체가 달라져 버린다. 예를 들면 팥빵이라는 이름의 회사라면 나는 브랜드 베이커리라는 회사 소속이라면 다른 지점의 직원은 팥나라라는 이름의 회사 소속이고, 또 다른 지점의 직원은 브레드, 또 다른 지점의 직원은 식빵 이런 식으로 회사 자체가 달랐다. 그래서 이 지점의 직원이 월급을 다 받아도, 다 같은 본사 소속의 직원들임에도 틀림없는데 나는 월급이 체납되는 식이었다. 4대 보험도 마찬가지. 그래서 4대 보험 문제로 고용노동부에 물어봤지만, 회사에서 신고한 회사마다 묶인 직원들의 4대 보험을 한꺼번에 내지 않으면 낼 수 없다는 답변만 확인될 뿐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4대 보험으로 A라는 회사 소속의 직원들이 사실은 A, B, C, D의 직원으로 신고가 되어있다고 하면, 이 A의 회사에 소속된 1,2,3,4,5,6의 직원들은 사대보험이 묶여있어서 체납된 이들 중 누군가가 빨리 처리를 해달라고 해도, 1,2,3,4,5,6의 직원들의 같은 달의 것을 한 번에 납부를 하지 않으면 납부 자체가 안된다는 말이다. 1이 대출을 받아야 해서 급하게 4대 보험 정리를 해달라고 해도, 회사가 1,2,3,4,5,6의 직원 것을 한꺼번에 납부해야 되는 것이라 회사의 입장에선 금액이 크니 당장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리고 체납된 것으로 그 회사에 압류가 들어가고 직원들의 4대 보험에는 문제가 없게 처리한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 회사가 폐점이 되어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런 식의 일들이 생각보다도 잦다. 게다가 6개월 체납이 되기 전 5개월 체납 때 1개월치만 납부해도 독촉장이 날아오지 않는다. 고로 내가 체납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도 오래 걸린다. 아예 모를 수도 있겠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시 그런 직종의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력 10년의 시간 동안에 이직을 한 횟수가 생각보다 잦다. 재미있는 것은 재입사를 세 번이나 했는데, 역시 벗어나기 쉽지 않은 굴레였다. 내 경력사항에 이직이 잦은 이유도 그런 이유들에서였다. 회사가 급여가 밀린다거나, 연장근무가 발생해도 급여로 지급되지 않는 것이나, 4대 보험의 체납 같은 이유. 마지막에 더 최악이었던 것은 그 악조건 속에서도 하루 잠 2시간씩 자가며 피땀 흘려 일해도 매번 급여 체납과 같은 상황에 말도 못 하고 빚만 늘었다는 것이다. 10년을 일하고 모은 게 하나도 없이 새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나 싶다. 물론 거길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끝까지 믿고 있었던 사람의 최후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나는 빠르게 나온 걸 거라고.
오래 일을 하고 싶었다. 건강하게 오래. 열심히 일을 하고, 일을 한 만큼의 대우를 받고. 나는 최소한 그 그룹 안에서 만큼은 1등이 되어야 한단 생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언젠가는 1등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서로 윈윈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내가 피폐해지는 줄은 모르고. 일을 하면서 등골 빼 먹히는 일을 내가 그렇게 당하는 줄도 모르고.
재취업을 하게 되면, 꼭 정말 건강하게 일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부수적인 요인들에 시달리지 않으며 오롯이 나 자신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해내는. 그런데 역시 너무 큰 꿈이었을까.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그냥 안정적이길 바랐을 뿐인데. 아니 안정적인 것도 욕심이고, 저런 일만 안 당하면 좋겠다는 생각인 것뿐인데. 그런 생각들을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하고 있자니 숨이 막혔다.
그래서 엄마를 졸라 바다를 가기로 했다.
속초로 3박 4일의 여행을 출발했다. 드라이브 삼아 국도로 가기로 했고, 5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돌아 바다에 도착했다. 저녁 내내 왔다 갔다 하면서 바다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가, 멍하니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파도소리가 왠지 나에게 위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했다.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쁜 마음도 왔다 갔다 했다. 차에서 우울하다는 딸내미 위해서 바다를 보여주려 열심히 운전해 와서 피곤한 몸을 겨우 뉘고 이제야 쉬고 있는 엄마 생각에 겨우 삼키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이 들 때까지 바다를 맴돌았던 것 같다. 차박 캠핑을 했던 터라, 내내 바닷가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바닷가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를 보고 있고, 파도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좀 살 것 같았다. 사실 처음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1박 2일을 계획하고 떠난 거였는데, 아쉬운 마음에 하루 더, 하루 더 하다 보니 3박 4일을 있었다. 엄마는 알고 있었겠지. 내가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하는 말을 할 때마다 다른 건 몰라도 바다는 꼭 데려다줬으니,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 항상 버티다 버티다 버틸 힘이 없을 때 나는 엄마를 졸라 바다를 보러 갔다. 그럼 엄마는 항상 바닷가에서 혼자 털어 낼 수 있도록 가만히 아무 말 없이 내버려 둔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사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이번 바다 여행 내내 그랬던 것 같다. 엄마는 아빠랑 자주 바닷가 여행을 가니까 라는 이유로 내가 혼자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내버려 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람의 소리에 민감해지는 편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최대한 사람이 없는 시간에 오로지 바다와 나만 있는 것. 그 어떤 것에도 치이지 않고, 그 어떤 생각에도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그렇게 한참을 현실을 놓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 어떤 것도 바뀌지 않은 현실에 도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 바다여행이 있었으니, 엄마가 있었으니 또 당분간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엄마, 너무 고마워.
쓴 눈물을 바다에 앉아 겨우 삼키고 멀리서 가만히 나를 보고 있던 엄마의 등 뒤로 가, 세상을 등지고 숨어버리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도망이 아닌가 싶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면, 버티다 버티다 당해낼 재간이 없을 때에는. 그저 말없이 나를 보고 있던 엄마의 등 뒤로 가 세상이 나를 볼 수 없게 숨어버린다. 엄마의 작은 등 뒤에 숨어 있는 것마저도 더 이상은 세상을 피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땐, 바다로 가 파도소리에 내 울음소리를 감추고, 바닷물에 눈물을 감춘다. 가장 숨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완벽한 얼굴로 나를 숨겨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세상으로 가 또 버텨내라고.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나를 숨겨준다. 늘 그 자리 그대로, 언제고 힘들면 찾아오라고. 그 어떤 것보다 큰 품으로 나를 숨겨주겠노라고. 그렇게 바다는 가만히 지친 나의 울음소리를, 나의 쓴 눈물을 한참 삼켜준다. 그렇게 또 오늘을 살아낼 수 있게, 다시 세상에 맞설 수 있게. 엄마도 바다도 가만히,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