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읽고 싶은 이야기
표지가 그럴듯한 책이 되기보다, 계속 읽고 싶고, 덮으면 생각나는 책이 되고 싶다. 그저 그런 마음일 뿐.
그럴듯한 표지 속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우리는 책을 고른다.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모르니 더 그럴 듯 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미리보기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책을 고를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럴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드물지도 모르겠다. 미리보기를 한다고 해도, 내용의 전체를 다 알 수는 없으니까 아마도 미리보기도 소용없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겪어봐야 안다는 말에 동의를 하는 편이지만, 사실 겪어본다고 해서 모든 걸 안다고는 할 수 없다. 오래된 인연의 귀한 모습을 발견할 때도, 오히려 이제야 알았다는 것에 한탄스러운 그런 것들도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펼쳐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럴싸해 보이다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중간중간 불편이 있을 수 있고, 지나고 지나면서 더 좋아질 수도, 오히려 끝까지 읽지 말걸 하는 내용일 수도 있다. 요즘 책에 대한 비유를 참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의 생각이 오래 든다. 사람을 책에 비유하는 것.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깊이 느껴지는 부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책이 닮은 점이 참 많아서일까. 표지가 그럴듯해 보여도 내용이 별로면 결국은 사랑받지 못한다. 사람도 마찬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읽는 것에 대한 부분도 선택의 연속인 것 같다. 완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에 대한 완독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한 사람을 완독 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가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부분이 그 사람의 처음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부분에 있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동안 완독에 대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완독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살아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나라는 책은 누구에게 어떤 모습일까. 표지는 어떻고 시작하는 문장은 어떤 느낌일까. 누군가에게 나는 읽고 싶은 책일까. 아니면, 표지를 넘기는 일마저 쓸모없어 보일 정도의 모습일까. 선택과 선택 사이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로 기억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누군가에게 읽고 싶은 책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내가 어떤 모습의 책일지, 그 사람이 읽는 다음 페이지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다. 좋은 이야기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늘 누구에게나 읽고 싶은 책이고, 다음이 궁금한 페이지라면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할까.
그저 오늘도 앞으로의 불안을 안고 있겠지만, 또 다른 한 장 한 장 새로운 페이지를 써가는 동안 읽고 싶은 책이 되기 위해, 이야기가 되기 위해 애를 써야지. 그냥 그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