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그 끝에 닿는 시선

by maudie


나를 채운다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너무 아파서 절뚝거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비도 오지 않는데 양볼에는 비가 오기도 했다. 넘어진 마음을 따라 한참을 그대로 멈춰있기도 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잠시 다른 길로 빠져도 보고, 곧장 가는 길이 끊어져 있으면 돌아가 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도, 가는 길을 잃어도, 가끔은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겠다는 마음이 남았다면 언젠가는 도착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걷고 또 걸었다. 양볼에 떨어진 비가 말라, 하얗게 소금을 만드는 날엔 따가운 볼을 씻어내려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분명 예전엔 그랬다. 양볼에 떨어져 맺힌 비도 고만고만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연스레 바람에 날아가 다시 금세 말랐고, 잠깐만 멈춰 씻어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넘어졌을 때도 그랬다. 예전에는 넘어져 피가 철철 흘러도, 상처가 깊게 패여도. 그땐 금세 아물 거란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처가 나고 피가 나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참을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조차도 버거울 때가 있다. 그리고 깊게 패인 상처는 피가 멎어도 새살이 잘 돋지 않고, 꼭 흔적을 남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짙어지기도 했다. 사라지길 바란 것들은 꼭 사라지지 않았다.


넘어지고 털고 일어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 다시 걷기까지의 시간도 꽤나 오래 걸렸다. 다시 넘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 발, 한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얻은 게 있다면, 같은 일로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속도가 더뎌진 만큼 걸음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왠지 걸음에 안정감이 더해진다. 더는 넘어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만든 걸음의 무게가 중심을 잡아준다. 이렇게 또 한걸음이라도 더, 나는 어제보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겠지. 예전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바빴다면, 요즘은 넘어진 김에 주위를 돌아본다. 시끄러운 주위가 잠잠해지면, 그때 다시 일어난다. 그것도 내 걸음의 무게를 더하는 일이 되기도 했다.


속도야 어찌 되었건, 우리는 완전히 멈추고 더는 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서지 않는 한, 여태껏 버티고 견뎌왔던 것들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라도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겠지. 잘은 몰라도 결국은 도착할 것이다. 단지 도착지점이 조금 바뀌는 것뿐이다. 그러니 양볼에 떨어진 비와, 넘어져 다친 상처를 탓하지 말고, 넘어진 김에 조금 쉬었다 이전보다 천천히 가면 된다. 같은 일로 다시 넘어지지 않게, 그것만 신경 쓰면 된다. 비는 멎을 거고, 다친 것은 언젠간 아물 테니까. 단지 그 흔적을 미워하는 마음만 가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넘어진 김에 주위를 둘러보고 시선의 끝에 닿는 것들을 잘 모아둬야 한다. 언젠간 그 기억들이 나를 지켜줄 테니. 조금 어렵겠지만, 넘어진 김에 쉬는 것을 아쉬워 말아야 한다. 잠시뿐이니까. 분명 그런 걸 테니까. 아쉬워할 바에야 그것을 그저 가만히 두고, 생각에 쉼을 주고, 닿는 시선에 집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를 지켜줄 어떤 것이 되어 다시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프다 눈 감지 말고, 닿는 시선마다 담아두길. 그리고, 우리는 어차피 다시 걸을 테니 상처 난 곳곳을 미운 마음으로 보기보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남은 흔적도 자연히 옅어질 거란 마음으로 봐주길 바란다. 누구보다도 건강한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보다 예쁜 내일을 만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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