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피었다. 온 세상에 초록이 피었다. 다른 색들은 존재감을 잃고 다들 숨어버렸나 보다. 세상을 채운 초록에 지고 말았나 보다. 그런가 보다. 고개를 돌려도 온통 초록이다. 햇빛에 부서져 같은 초록임에도 색이 다 제각기 다른 빛을 낸다. 같은 초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눈이 부신 것이 있는 반면에 짙은 초록이 마치 그림자에 잡아 먹힌 듯하기도 하다. 그렇게 세상을 채운 초록에 괜히 마음이 들뜬다. 사이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괜히 눈을 감는다. 바람이 불어 부딪히는 소리마저 초록으로 느껴질 만큼. 감은 눈 안에도, 귓속에도 초록이 채워진다. 온통 무채색이던 때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거짓말처럼 온 세상이 물들었다. 감은 눈 안에도 초록이 채워졌을 만큼 참 대단하게도 시간을 잊고 가득 채운다. 그만큼의 설렘도 같이. 간간히 보이는 초록을 뒤따라온 파랑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