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에 있다.

참 의미 없다. 질문도, 답도.

by maudie

요즘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은 뭐하냐 다음으로 듣는 이야기. "요즘은 만나는 사람 없어?"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느낌의 질문이 훅 치고 들어온다. 때마다 나의 대답에는 흔들림이 없다. 고민도 없다. "응, 없어. 없고, 없을 거야." 이어 나오는 이야기는 꼭 '도대체'와 '언제까지'다. 그 이야기에는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는 다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손을 건네고 싶은 날이 온다면, 생각의 전환이 온다면. 그때는 달라질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이. 하지만 웬만하면 변할 것 같지 않다. 오늘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왜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지에 관한 그런 이야기. 막힘없이 이야기를 했다. 잠시의 고민도 없었다. 이상한 사람을 만날 바에야, 글을 쓰겠다 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생각을 담는 일을 꾸준히 해올 뿐이지만, 차라리 나는 그것이 좋겠다 싶다. 물론, 코로나가 발발한 뒤부터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을 최소화하고 있고, 다치고 깨진 이후로 일도 쉬고 있다. 누군가를 만날 여유는 생겼지만, 굳이 그 여유를 위해 집 밖으로 나갈 마음의 여유는 없어진 것 같다. 그 시간에 그냥 혼자 산책을 나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변하고 있다. 쉬는 날에도 집에 가만히 쉬어본 적이 없던 나는, 집에 혼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영화는 혼자서라도 영화관에서 보던 나는 집에서 넷플릭스로도 잘 안 보게 되었으며,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 그 시간에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하던 나는 잠이 늘었다. 커피는 카페에서 분위기와 마시는 거라고 늘 이야기하던 카페 추종자는 홈카페에 빠졌고, 홍대를 좋아하던 나는 홍대보다 동네가 좋아졌다. 많은 게 바뀌었다. 취향이 하나하나 다 바뀌어가고 있다. 친구랑 만나서 이따금 맛있는 음식에 술 한잔 가볍게 하는 것을 즐기던 나는 집에서 잠들기 전 홀로 마시는 맥주를 더 좋아하게 됐다.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많이 바뀌어간다. 코로나 탓이라고 하기엔 나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극단적인 것 같다. 익숙해져 간다. 절대로 내가 하지 않을 것 같던,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던 것들을 하고 있는 내가 익숙해져 간다. 자연히 사람을 만나는 일도 멀리하게 되었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더 큰 사연이 있었지만.


나의 이야기를 봐왔던 사람이라면,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결혼을 해 예쁘게 잘 살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거품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버렸지만, 그게 나를 망친 게 아니라 나를 살린 거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겨우 버틴다. 잔가지를 하나 손에 쥐고, 부러질 듯한 그것을 쥐고, 겨우 버틴다. 아주 가끔은 왜 그때 버티지 못했을까. 내가 더 버텼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의 나는 없을까. 참 많은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그때 도망치지 않았다면, 내가 오해를 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지금 잘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꼭 오늘처럼.


결혼을 위해 폭력적인 모습을 숨기고 내내 결혼은 나와하겠다 했던 사람. 햇수로 치면 10년이라는 시간을 알았고,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했고. 이제 다 놀았으면 시집오라던 사람. 본인의 안전한 집으로 들어와 마음 편히 쉬라던 사람. 나는 그 말이 나를 가두려 했던 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가스 라이팅이라고 하지. 그래 가스 라이팅. 당근과 채찍을 적당히 주며, 마치 내가 잘하면 이 세상 더없이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게 하는 그 행동이, 외려 나를 겁먹게 했다. 이렇게 하면, 내가 이만큼 사랑해 주잖아. 내가 너를 지켜주는 거야. 네가 힘들면 네가 힘든 것들 다 하지 말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아이나 낳아 키우면 된다는 사람. 힘드니까 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사람. 아이에게는 엄마와의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하니, 아이를 위해 아이가 클 때까지는 아이만 보고, 살림만 해도 괜찮다는 사람. 잘 보면,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하라는 말이다. 네가 힘드니까 라는 전제를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 그냥 들으면, 그게 왜? 그게 얼마나 좋아. 살림만 하라는 말이 얼마나 고마워. 남들은 애 낳고 일도 하라고 하던데, 그렇게 해주면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야? 정말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그 말에도 모순이 숨어있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그래도, 그때 가서 조절할 수 있잖아. 그래도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면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말.


내가 말하는 부분의 일부분만 보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 이야기를 네가 힘드니까, 네가 힘들 수도 있으니까.로 포장한 것일 뿐. 가부장 적인 태도를 가지고 모든 생활에 너는 여자니까로 나를 가두고, 뭘 하는지 하나하나 다 이야기를 해야 하고, 시간에 제약을 두고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강제하는 것들이 있다. 본인은 되고, 나는 안된다. 나는 여자니까. 일을 안 해도 좋다가 아니라, 하지 말라는 거였다. 좋게 이야기를 할 때는 네가 힘들면 안 해도 돼. 자기가 화가 날 때에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돈은 내가 벌어. 집 밖으로 나갈 생각 하지 마.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 됐지 여자가 일은 해서 뭘 해. 얼마나 번다고 일해, 그 시간에 집에서 밥이나 해. 생산성 없게 친구는 뭐하러 만나. 여자가 되어 가지고, 신랑이 일하고 돌아왔는데 밥도 안 해놔? 내가 일하고 와서 밥도 해야 해? 네가 먹고 싶다고 했으니 못 먹겠어도 먹어. (속이 안 좋아 토할 것 같았던 상태에서 한 말입니다.)


결혼을 하자고 이야기를 할 때와, 결혼을 하기로 하고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난 뒤의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별도 달도 다 따다 줄 것 같던 사람은, 세상없이 다정하던 사람은 어디 가고 없었다. 너는 이제 내 거야. 그 한마디에 모든 걸 담았다. 나는 가지고 싶은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10년을 알았다면서 그것도 하나 눈치 못 챘다고?라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오래 알았다며, 그걸 몰랐어? 24시간 붙어 지내지 않았고, 각자의 연애도 해왔다. 알고 지냈지만, 결혼을 준비하기 1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각자의 연이 있었고,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났다. 집중하던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정하고 숨기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눈치가 빠르다고 해도 작정하고 숨기려는 사람의 속을 알기는 쉽지 않다.


많이 지쳐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 더 이상은 마음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한결같이 나를 유리구슬처럼 깨질까 아끼던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은 다시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기에, 내키지 않았던 결혼도 결심한 것이었다. 현실에 대한 도피라고 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급하게 마음먹은 일이긴 하지만, 이 사람이라면 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을 하게 할 만큼, 세상 다시없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런 상황에 도망쳤고, 나의 상황은 바뀌었다. 성격도 취향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근래 드는 생각이 있다. 그때 만약 내가 그곳에서부터,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내가 오해를 한 것이라면? 그래서 내가 그대로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 나란히 걷겠노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참고 갔으면, 나는 지금쯤 행복해 있을까? 나는 어떤 모습일까. 가뜩이나 있었던 남자에 대한 그 불안감이, 공포가 밀려드는 것들을 제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을 수 있었을까? 괜히 시간이 남으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내가 그때 버텼다면, 내가 그때 했던 것들이 정말 오해라면. 내가 아끼던 것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나의 별이 지지 않았다면. 그럼 나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지금과는 전혀 다른 미래를 살고 있을까. 조금만 더 가볼걸 그랬나.


어차피 되감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나는 길을 건너왔고, 손을 뿌리쳤다.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그건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되감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다시 시간을 되감는다면, 이 사람보다 차라리 그 이전에 만났던 사람에게로 돌아가고 싶다. 그 정도로 생각하던 내가 가끔은 나의 별이 지지 않았다면, 그때 내가 엎어버리지 않았다면... 을 가정하고 있다니 참 아프다. 그런 내가 참 아리다.


곱씹는 일은 아무런 힘이 없다. 소용도 없고, 가치고 없다. 어차피 되돌릴 수 없고, 되돌린다고 바뀔 것 없다. 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만큼 참 의미 없는 것은 없다고.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보다. 여전히 같은 자릴 맴돈다. 아프다고, 아팠다고. 힘들다고, 힘들었다고.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혹시라도 마주치지 않을까란 불안감에 집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은 아닐까란 합리적인 의심도 해본다. 친구를 만나면, 여전히 나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나는 아직도 숨이 막힌다. 과거에 살고 있다고.


한심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분명, 그럴 거다. 그래, 어쩌면 과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참 의미 없고, 한심한 일일 거다. 알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어차피 과거가 되었고, 다시 돌아가지도 않을 거고, 가고 싶다고 해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돌려 다시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는데, 과거에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얼마나 한심할지도 안다. 하지만, 이건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과거에 산다. 뭐라고 이야기를 해도, 그러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고, 생각을 해도.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는 여전히 과거에 산다. 가십이 아니라 빠진 발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다.


그래서 언제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을 거냐는 물음에 답을 할 수 없다. 왜 누구도 만나지 않냐는 물음도 답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것. 내가 언젠가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날이 있다면, 과거보다 미래를 생각하는 일을 더 당연스럽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땐 답할 수 있겠지.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있어 라고. 누군가를 만나고 있어도 그렇다고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를 더 당연스럽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욕을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의 현재는 아직 여전히 남들 시선에 놓인 과거일 뿐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 한참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왜 너는 여전히 그곳에 사냐는 말, 그 어떤 말에도 동의할 수 없고, 이렇다 답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과거에 산다. 벗어나지 못한 그곳에 내가 있다. 언제까지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강제할수록 더 깊이 박힌다.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쓸수록 더 깊이 빠졌다. 시커멓게 물들다 못해 썩어버린 마음에게 나도 재차 묻는다. 언제 괜찮아질 거냐고. 당신이 묻지 않아도 나 스스로 묻는다. 그러니 내게 겨누는 손가락질을 멈췄으면 한다. 같은 이유로, 같은 경험을 한 게 아니면서, 나로 살아온 것처럼 이야길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도 당신의 인생이 처음이고, 당신도 어제의 당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에 산다 비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늘 사랑에 목말라 틈 없이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을 다 긁어다 바치던 나는 긁어다 주려다 긁힌 상처가 여전히 깊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다. 참 이상하게도, 밤이 되면 쓸데없는 생각이 늘어나는 것 같다. 잠이나 자라고, 과거에서 벗어나는 것 보다도 중요한 건, 지금의 나를 쉬게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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