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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Nov 18. 2020

5년의 연애

묵혀뒀던 이야기

-  처음, 그리고 기대감

 우리가 처음 알게 된 건 스마트폰 랜덤으로 다른 사람과 채팅을 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유행하던 시점을 조금 지나 각자의 생활에서 조금 지쳐 지루하고 무기력했던 어느 날. 외국인과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장점과 외국어 실력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애플리케이션 베니스에서 랜덤으로 딱! 나도 당신도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후 실행하지 않다 우연히 너무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했던 그날 그 시간. 우리는 아주 우연히 우연한 시간에 만났어.


 나도 당신도 서로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지. 시시콜콜. 시시콜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당신과의 헤어짐이 아쉬웠던 거야. 이대로 당신과 헤어진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아서 나는 카카오 톡 아이디를 물어보았지? 흔쾌히 당신은 나에게 연락할 아이디를 알려줬지. 기대감이 두둥실 두둥실 부풀어 올랐어. 아, 정말, 오늘 밤 잠은 다 잤어.

아, 내일은 무슨 얘길 하지?

 당신과 이야기하는 게 좋았어. 잘 모르는 당신이지만, 당신의 이야길 듣는 게 너무너무 좋았어. ‘시간아 흘러라 나는 그래도 이 사람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련다. ’ 하고 나는 어떤 이야기로 또 말을 걸까 하루 종일 둥둥 떠다니는 마음 겨우겨우 추스르며 하루가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이 나는지도 모르게 당신에게 집중했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조금씩, 당신을 알아갈수록 당신이 궁금해졌고, 당신을 알아갈수록 당신이 즐거워졌어. 당신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서 조금씩 당신이 보여주는 한에서만 당신을 알게 되는 것이 살짝살짝 아쉬워져 가고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당신에게 나는 온 신경을 집중했어. 그렇게 명절도 보내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일들을 겪어가는 동안에도 당신과의 연락을 놓을 수가 없었어.  여기까지 당신은 아직 낯선 사람이었어. 낯설면서도 왠지 따뜻하고 멀지 않은 느낌이었지. 처음 느끼는 무언가가 있었어. 아주 신기하게도 말이야.


-  당신이 내 마음에 들어온 순간

 당신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있을 때쯤이었나, 나는 친구가 너무 우울해하는 것 같아 구미로 달려갔고, 친구와 나는 술을 한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 물론 당신 얘기는 빠질 수 없는 아주 아주 중요한 이야기였지. 우린 얼큰하게 취했어. 너무 오랜만이어서 정말 얼큰 얼큰했지. 홍합탕에 키위 소주를 한잔 하고선 기분 좋게 걸어서 집에 가기로 했어. 날이 아직 차지 않았고,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온몸이 뜨끈뜨끈 했거든.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파르페를 하나씩 쥐고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몰라. 그렇게 친구네서 잠을 자려다 말고 친구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부고로 인해 나는 친구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안타까워서 그저 넋 놓고 울었지. 너무너무 무섭고 너무너무 슬펐어. 정신이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고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 근데 그 순간에도 당신이 생각났어. 그리고 당신이 날 달래줬고,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어. 당신 덕분에 금방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어.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때 당신은 정말 멋졌어. 당신 목소리 한 번에 내가 뻑이 갔잖아. 하하.

 그날 처음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어. 당신의 따뜻함 덕분에 난 금방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추슬러 다시 웃을 수 있었어. 다 당신 덕분에. 친구들과 어울리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당신은 피곤하면서도 내 걱정을 해줬어. 늦게 들어가지 말라고 위험하다고. 나는 그게 너무 좋았어.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설레고 그 사람 한마디에 온 정신이 헤실 거리는 게 얼마만인지. 너무 행복했어. 그러고도 우리는 한 참 더 연락만 했어. 통화까지 발전을 했으니 많이 발전한 건가? 어쨌든, 나는 당신의 목소리 들은 후로 당신의 목소리 없인 잠이 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 에구.



-걱정과 기대가 반반. 첫 만남.


 당신이 보고 싶어 졌어. 아주 아주 많이 말이지. 근데 내 꼴이 말이 아니었거든. 난 자신이 없었어. 그래도 난 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어. 그래서 당신 얼굴을 보게 해달라고 졸랐지. 사진은 겨우겨우 얻었는데, 이건 사진이 벌건게 내가 어떻게 알아. 실물이 보고 싶다고.

 졸랐어.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졸라댔지. 지금의 내 꼬락서니 따위 아무 상관없었어.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해도 난 꼭 당신이 만나고 싶었어. 근데 아무리 졸라도 당신은 그래 다음에 이번엔 어렵겠는걸? 하고 요리조리 피해 갔어.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 나도 나름대로 준비를 해나갔어. 이상하게 당신이 꼭 보고 싶었거든. 이상하게 아주 이상하게도 나는 당신을 꼭 봐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졌거든.


당신이 보고 싶어요.
이상하게도, 나는 당신을 꼭 봐야겠어요.


 엄마랑 드라이브를 갔어. 당신이 졸라도 만나주지 않을 것 같은 말만 해댔고 나는 결국 엄마 차에서 울었어. 훌쩍훌쩍. 엄마에게 안 들키게 바다를 보는 척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연신 눈물만 닦아냈어.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내내 당신에게 졸랐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치사해.


 나는 집에 와서도 엉엉 울었어. 밥도 먹기 싫었어. 그냥 엉엉 울었어. 그 와중에 그 미운 당신 목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핸드폰만 들고 밖으로 나와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지. 보고 싶다고 만나고 싶다고 칭얼댔어. 당신은 난감하다는 목소리로 다음에 다음에만 이야기했어. 마음이 너무 아팠어. 왠지 다음은 없을 것 같았거든. 당신과 통화를 하면서도 열심히 울었어. 몇 시간을 울었는지 몰라. 처음엔 우리 아파트 단지만 돌면서 울다가 운동하러 나온 엄마와 마주칠까 봐 으슥한 놀이터에서 울다가. 우리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울었어.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울었어. 쪽팔리잖아? 하하.

 당신에게 얼토당토않게 버스에 뛰어들겠다고 헛소리도 해보고. 다음은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아주 아주 진상을 떨어댔지.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러운 걸? 으악. 그래도 당신이 보고 싶었어.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았거든. 울고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다신 연락하지 말자고 협박 아닌 협박도 해보고. 근데 당신은 다음에. 다음에. 그랬어. 내 맘도 모르고. 나쁜 사람. 나쁜 사람.


 저녁도 먹지 않고 빈속에 몇 시간을 내리 울었더니,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어. 어지러워서 여러 번 나자빠지고, 만화 속 여주인공 하니처럼 다시 벌떡 일어나서 걸어가며 울다가 또 나자빠지고. 계속 반복했지. 목에서 피 맛이 날 정도로 울고 어지러워서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어. 그래도 오지 않는 당신이 너무 미웠어. 너무너무 미웠어.

 다신 연락하지 않겠노라고 삭제도 했다가 그것도 모자라 차단했다가. 다시 해지했다가 등록도 다시 했다가. 녹음되어있는 당신 목소리라도 듣겠다고 이어폰 가득 들리게 소리를 최대로 해놓고 놀이터에 쭈그려 앉아 엉엉 울어댔어. 혹시 와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집에도 못 들어가고 점점 시간은 늦어지고 날은 추워지는데 바들바들 떨었어.

 당신이 올 것 같았어.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당신이 추웠지? 많이 기다렸어? 미안해하고 달려와 줄 것 같았어. 조금만 기다리면 당신이 와서 꽉 안아줄 것 같았어. 근데, 안 오는 거야 자꾸 시간은 가는데 안 오는 거야. 온다고 얘기하고 안 와. 전화도 안 받아. 후하. 이대로 당신 얼굴도 보지 못한 채로 끝이구나.

 마음을 추스르려고 애를 참 많이 썼지. 근데 당신 전화가 왔어. 지금 출발한대. 20분이면 도착하니까 집에 들어갔다가 나오래. 근데, 집에 들어가면 못 나와. 그래서 엉엉 운 얼굴만 연신 닦으면서 기다렸어. 20분이 지났어. 연락도 없어. 전화를 다시 걸었더니 아직 집 이래. 너무 늦었으니 집에 들어가고 다음에 만나재. 하... 너무 미웠어. 너무너무 미웠어. 나한테 거짓말을 한 당신이. 나를 이만큼 기다리게 한 당신이 너무 미웠어. 그래서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고 했어. 그랬더니 또 오겠다더라? 그래서 또 20분 기다리고 당신은 또 안 오고.

 그렇게 시간만 계속 흐르고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왔어도 이미 오래전에 왔겠다. 화가 많이 나서 당신한테 말했지. 당신은 나한테 올 마음이 없는 거라고. 왔으면 이미 왔어도 남을 시간인데 당신은 점점 지체만 시킨다고. 이제 당신이랑 만날 일 따위 없을 거라고.

 근데 당신이 오겠대. 마지막으로 믿어보는 셈 치고 기다렸어. 한 30분쯤 기다렸을까? 당신이 나타났어. 정말로! 내 앞에! 언빌리버블! 백마 탄 왕자처럼 당신은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났어. 하얀색 말은 아니었지만, 하얀색 승용차를 몰고 말이야.

 어? 그런데. 엄마. 차에서 내리질 않아? 우 씨 창문 내리고 쳐다만 보더니 가네. 우 씨. 나빠. 이 씨. 이게 뭐야! 뭐야? 진짜 가는 거야? 그렇게 실랑이를 벌였어. 이 무슨 쓸 데 없는 체력 낭비야. 야심한 밤에 말이지. 으으. 미워. 그렇게 또 한 10분 15분 실랑이를 벌이다가. 당신은 신한은행 CD기 앞에 차를 세우고 뭉그적 뭉그적 거리다가 차에서 내렸어. 면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쑥스러운 듯이 수줍게 웃으면서 멀리 떨어져서 한참 웃었어. 가까이 오지도 않고, 말이야. 우이 씨.

 암튼 그렇게 한참 또 뭉그적 거리다가 어디서 기다린 거냐며 조금 걷자며 그렇게 우리는 처음 얼굴을 마주했고, 처음 나란히 걸었어.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근데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어. 어지러워서 당신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걷는데 너무너무 좋았어. 눈이 퉁퉁 부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도, 열심히 걸었어. 왜냐면 당신이 옆에 있었으니까. 그렇게 조금 걸었어. 한 10분쯤 함께 있었을까? 당신은 너무 늦어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어. 참 헤어지기 싫은 밤이었지만, 당신 얼굴을 봤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엄청 행복했으니, 당신을 얼른 보내주기로 했어. 만나면 뽀뽀해주겠다더니. 포옹해준다더니. 머리도 쓰담쓰담해준다더니. 하나도 안 해줬어. 하는 생각만 그득그득 한 머릴 붙잡고 당신을 보내주려는데 당신이 꼭 안아줬어. 온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졌어. 당신 냄새 당신 품이 너무 좋았어. 그렇게 당신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또 한참 동안 잠을 설쳤어. 


참 힘든 하루였어. 당신을 만나기 참 힘들었지만. 기특하게도 해냈어.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게 했어. 나 참 기특하다!


- 고백. 그리고 어색함

 나는 부끄러운 모습이었지만, 당신과 만나서 너무 좋았어. 그리고 나는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당신에게 빠졌어. 나는 확신이 들었어. 아 이 사람 이야. 이 사람 이어야 해. 당신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어. 만나기 전부터 당신이 좋았지만, 당신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했을 뿐, 당신에 대한 확신은 없었어. 근데 당신을 만나고 나는 확신이 들었어. 그래서 다음날 나는 당신에게 고백을 했어. 당신이 내 남자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근데 당신은 의아해하며 오히려 나에게서 뒷걸음질을 쳤어. 만나기 전엔 만나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나를 좋아할 수 있냐며 멀어지더니, 이번엔 어떻게 한번 만났는데 확신이 들 수 있냐며 멀어졌어. 두 번째 만나도 내 마음이 같다고 얘기하면,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했지. 그래서 우린 두 번째 만남을 가졌어.

아, 이 사람 이야. 이 사람 이어야만 해.

 내 마음은 더 확실해졌어. 어두운 밤 놀이터에 노란 가로등 밑에서 본 당신은 정말 예뻤어. 너무너무 예뻤어. 당신이 미소 지을 땐 정말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어. 난 확실하다고 한번 더 당신에게 얘기했어. 헤헤. 결국 당신이 내 남자 친구가 되었어.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지났어. 우리는 참 많은 일이 있었어. 오늘은 우리 1000일 하고도 200일이 되는 날이야. 나는 오랜만에 엄마 아버지 집에 내려왔고, 정말, 아주 오랜만에 내 노트북을 켰지. 이게 뭐지 하고 열어보는 순간 하하. 너무너무 웃긴 이야기가 들어있는 거야. 한 줄 한 줄씩 읽어내려오면서 너무 재미있더라. 시간이 지났어도 생생한 그때의 일이 글로 써져 있어서 더 선명하게 기억이 났어. 참. 그땐 참 어렸고, 그땐 용기가 있었나 봐. 무섭지도 않았나? 뭘 믿고 나는 너를 선택했을까? 지금도 그때의 내가 신기하다. 너도 내가 신기하겠지. 너는 요즘도 나한테 한 번씩 물어보곤 하잖아. 너랑 왜 만나냐고. 나도 궁금해 맨날 밀어내기 바쁜 너랑 왜 아직도 만나는 건지. 근데 나도 모르겠어. 널 왜 만나고 있는 건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서 대답을 매번 모르겠다고 하는 거고.


 - 우리가 만난 3년이라는 시간.

우리가 만난 지 벌써 3년이 지났어.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오늘이 천이백일이야.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제 우린 오랜만에 만나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미스터 힐링이라는 기계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마사지 카페도 갔지. 첨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더니 이젠 만날 때마다 가자고 하는 거기 말이야. 정말 일상적인 데이트를 했어. 만나서 밥 먹고 영화 보고 카페 가고. 집에 돌아와서 아빠가 무슨 데이트를 했길래 일찍 들어왔냐고 하는 말에 ‘뭐, 영화 보고 카페를 갔지.’라고 했더니 무슨 데이트가 뭐 특별할 거 없이 지루하냐고 하더라. 뭐 그럼 피곤한 사람 붙잡고 여기 가자 저기 가자  할 수는 없는 노릇인걸 뭐. 나도 피곤하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무뎌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는 없겠더라. 편해지는 건지, 아님 정말 아무렇지 않게 무뎌지고 있는 건지 감이 잘 안 오더라. 편해지는 거가 맞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너랑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걱정이야. 3년이라는 시간을 너랑 같이 보내면서 점점 시간은 지나고 편해지고 그런 건 좋은데 서로 바빠서일까.. 점점 멀어진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나 봐.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헤어질 위기도 계속 찾아왔지. 물론 매번 내가 서운해하고 너는 그걸 받아줄 수 없어서였지만. 너는 나를 이해하기가 어려웠겠지. 어쨌든 한 번씩 찾아오는 위기를 넘기고 우린 아직 만나곤 있어. 그럼 다시 타임머신을 타볼까? 지금부터는 아주 기억에 남는 여행을 몇 가지 이야기해볼까 해.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버려서 가물가물하지만. 두서가 없어도 이해하길 바라. 시간도 물론, 순서대로는 아니겠지 하하하.


- 태안, 빛 축제

나는 야경을 참 좋아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 작은 불빛들이 모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지. 그런 나를 위해 너는 태안에서 하는 빛 축제를 알아보고 나를 데려가 줬지. 세상에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너랑 함께 하는 너무 오랜만의 여행이라 들뜬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방방 거리면서 잘도 쏘다녔고,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이 되도록 사진을 연신 찍어대며 빵긋거렸지. 너랑 손을 잡고 여기에 함께 와서 걷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나를 주체할 수 없었을 거야, 아마. 넌 모르겠지 이런 기분.

어쨌든 나는 그날 너무너무 행복했어. 공룡 사진도 찍고 눈 내리는 듯한 반짝반짝한 숲길도 지나고, 사람 많은 그곳에서 너랑 손잡고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구름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으니까. 너무너무 고마웠어. 그 시간이, 함께 있어준 네가. 거기서 우리 횟집도 갔어. 와. 내가 또 좋아하는 게 날거지 날 거. 하하. 와 바닷가에 가니까 바다 짠내도 나고 기분이 너무너무 상쾌하고 좋은데. 회를 먹다니. 이 야호!

   동동 동동 쿵쾅쿵쾅 방방 방방 여보 빨리 와!

그렇게 이 집 저 집 둘러보다가 한 곳을 정해서 들어갔고, 회를 먹기 전 해산물도 먹을 수 있었어. 와 근데 나는 이때만 해도 바닷가 앞이니 무조건 안전하고 싱싱하다고만 생각했지, 전혀 위험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 거야. 오빠가 해산물 별로 안 싱싱해 보인다면서 먹지 말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뭔 소리냐며 바닷가니까 무조건 괜찮다면서 혼자 굴을 후루룩 신나서 먹어댔지. 오빤 싫다고 먹지 않았는데. 그때 말을 좀 들을걸.

잠복기가 지나고. 고열에 시달리고 자칫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노로 바이러스. 여행도 함께 하고, 밥도 함께 먹었는데. 아무 탈 없이 일상으로 돌아간 오빠와는 다르게, 자꾸 속이 메슥 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고열에 시달리고 노로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지. 지금 생각해도 아주아주 끔찍한 병이야 정말. 다신 걸리고 싶지 않아.

같이 굴을 먹어도 그 바이러스 균을 가지고 있는 굴을 먹은 자만이 얻어걸린다는 그 노로 바이러스에 걸린 나는 병원에서 꼼짝도 못 하고 고열에 시달리고 앞뒤로 뿜어내고 말았지. 한 4주 정도는 앓았던 것 같아. 출근해서도 하루 종일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강제로 퇴근을 하곤 했었지. 아 끔찍해. 테러블!!

그렇게 행복한 여행은 마무리가 좋지 않았지. 그게 태안의 기억이야. 다신 굴 안 먹어야지.
그래도 너무 고마웠어. 함께 해준 오빠가 있어서 너무너무 행복했어.

평안하기만 했던, 호텔로의 여행. 


양평이었을 거야 아마. 호텔 이름이 뭐였더라? 현대 블룸비스타였나? 깔끔한 비즈니스호텔 느낌이었지. 아 갑자기 생각이 났네. 평택에 바닷가 근처에서 우리 첫 여행이었던가? 아주 어마어마한 곳이 있었구나! 우리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가? 평택 호 근처였던 거 같아. 오빠가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다며 1박으로 여행을 가자고 했지. 그땐 정말 쓸데없이 짐만 많이 챙겨 갔던 거 같아. 뭣도 몰랐으니까.

오빠랑 호텔로 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들떠서 한 며칠 설레서 잠도 제대로 못 자던 시절이었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겨. 하하. 암튼 우린 저녁에 도착해서 알콩 달콩했지. 그때는 오빠도 어렸을 때라 그랬는지 왕성했지 흐흐. 그 날이 우리가 만난 3년의 시간 중에 가장 오빠가 파워풀했을 걸? 그땐 정말 눈만 맞아도 서로 변태가 되던 시절이었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너무 그립구나. 허허허허 허. 아쉬워 아쉬워 타임머신 타고 갔다 오고 싶구먼 이거.

어쨌든, 그땐 아직 뭘 잘 모를 때라 대형사고도 쳤지, 아 젠장. 그때 생각하면 진짜 멍청했던 듯. 그날 대형사고로 우리 진짜 웃겼어. 새벽에 잠도 안 자고 이불 말리느라고 진짜 엄청 애썼다. 아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다.

어쨌든 그때가 제일 재밌었어. 그때가 제일 사랑받는 느낌이었고, 암튼 뭐 양평 호텔에선 침대를 따로 써서 좋은 게 있었지. 뭐 같이 눕지 않아서 아쉬운 것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내가 널 잠버릇으로 저 멀리 보내버리지 않을 수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걱정 없이 잠든 것 같아. 덕분에 이가 부서져라 부득부득했겠지만. 그건 뭐 고쳐보려고 해도 심리적인 요인이 가장 크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하더라. 틀니 같은 것도 사용해봤는데 소용도 없고.

그때의 여행은 사고도 없고 아주 조용하고 무탈한 여행이었지.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호텔 이외의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아. 역시 사건 사고가 많아야 기억에 확 남나 봐. 평택의 그 호텔에서처럼 말이야.

그때 오빠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었는데, 화가 나서 모조리 지워버리는 바람에 다 삭제되고 없는 게 너무너무 슬프다. 아, 오빠 사진 찍은 거 엄청 많았는데 다 날라 가고 없지 뭐야. 정말 이럴 줄 알았으면 클라우드에 오빠 사진 가득 넣어두는 건데 그랬나 봐. 아까워.

우리 함께한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역시 평택 호텔 인가보다.
가장 우스웠고, 가장 강렬했던 시간.






핸드폰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언제 쓴 건지 모르겠는 아주 낡은 이야기를 발견했다. 보물상자에 넣고 땅에 묻어둔 것 같은 이야기. 지금 다시 읽어보니 한참 어렸다. 아무것도 몰랐던 때의 사랑은 저렇게 순수한 모양이었다니. 완성하지 못한 글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그때의 내가 짠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했던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없다. 하지만 그때의 추억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나니까. 과거가 없는 사람은 없다. 시작이 어찌 되었건 간에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사람이기에. 없었던 시간으로 만들어 버리기엔 내 20대를 통째로 날려버려야 하는. 


5년이라는 시간을 만났고, 참 많이 사랑했던 사람. 돌아보면 가장 열렬히 사랑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상태로 후회 없이 사랑을 했던 것 같다. 후회라는 거. 지금 이 사람에게는 남아있지 않은, 아직 내가 다 잊지 못한 사람에겐 후회가 남은 듯 한걸 보니. 아마도 이 사람에겐 바닥을 다 퍼주고 서야 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남아있는 마음 없이 다 내어주었던 것 같다. 사랑받으려 아등바등. 사랑을 받았다기보다는 사랑을 주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 주고 나니 남은 게 없었다. 다행인 걸까.


지금 그 사람에게는 예쁜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가가 있다. 우연히라도 길에서 마주친다면 슬쩍 눈인사를 건넬 수 있을 만큼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지만, 추억만큼은 한편에 접어두고 쉬이 버리지 못할 것 같다. 그냥 그게 다다. 그저 지나간 사람. 오래 묵힌 일기장 같은 사람. 그때의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사람.


다시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후회 없이. 시간이 지나고 돌아봐도 남은 것 없이 그저 한 장의 추억이라 웃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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