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의 현실을 가리고, 모른 채 잠시만 숨어있고 싶다. 현실도피. 여행은 그런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해본다. 꼭 굳이 어디 유명하고 좋은 곳을 가야 여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멀어지는 것, 그 자체로도 충분히 여행이 되는 것 같다. 굳이 시간을 내서 멀리 떠나야만 여행이 아니라, 잠깐의 시간이라도 현실을 벗어나 마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생각보다도 어렵고, 생각보다도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처음 시작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시시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도 그 짧은 현실에서의 도피가 강력한 힘을 가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쉼이 될 수 있다. 시간이 나지 않지만, 어디론가 도망쳐 버리고 싶다고 한다면, 굳이 어딘가로 가지 않고 집 앞 호텔에서 하룻밤 묵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 될 수 있고, 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볼 것이 뻔하지만, 누군가에게 그것은 쉼일 수도, 숨일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도망치고 싶은데 어디 갈 수는 없을 때에, 다음날 출근을 하더라도 출근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친구와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살기 위해서. 쉼은 정말 다음을 위한 멈춤인데, 퇴근을 해서 집에 가더라도 몸은 퇴근했지만, 정신은 퇴근을 하지 못한다거나, 다른 일상의 일들에 치여 결국은 온전한 쉼을 쉬지 못할 때, 나는 도저히 쉬지 않고는 더 버텨낼 힘이 없을 때 말이다. 굳이 그렇게 어디서 묵지 않더라도, 나를 모르는 동네로 가 한참을 걷는다. 평소에 마주하는 그런 동네가 아닌 곳에서 괜히 멀지 않지만 가본 적 없는 그런 곳에서, 슬쩍 길을 잃어 본다. 처음 마주한 곳이기 때문에 내가 어디로 가든, 그곳은 온전히 새로운 공간이어서 생각의 멈춤에도 도움이 되더라. 그래서 나는 짧은 여행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내가 늘 다니는 골목을 조금만 벗어나도 나에겐 충분한 여행이었다. 생각이 생각을 물고 따라와 쉴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것들을 뒤로하고, 어떤 것도 나의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거울이 되지 않는다면, 그 순간만큼은 정말 살아 있는 것 같으니까. 잠시 길을 잃어도 좋다. 거울을 깨부수어도 좋다. 어차피 완전히 길을 잃어 돌아올 곳을 모르게 되지 않는 이상에서는, 잠시 벗어나도 좋다. 그게 정말 하루가 되었든, 반나절이 되었든 그 시간의 길이는 상관없다. 가늠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오롯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여행이다. 쉼은 곧 숨이라 생각한다. 쉼이 없이는 우리는 숨 쉴 수 없다. 그런 시간들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그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오래 달리려면, 무조건적으로 속도를 내는 것보다도 한 번씩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망가진 곳은 없는지, 정비도 필요한 법이다. 그게 사람이었던, 사람이 아니었던. 굳이 먼 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을 깨부수고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잠시 길을 잃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괜찮으니 현실에서 벗어난 쉼을, 숨을 그리고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