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유지하던 머리를 잘라버렸다.
머리를 자른 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그 머리가 자라는 동안 만들어진 기억들을 잘라내는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 이후로 머리를 단발로 짧게 자른 적이 없었다. 짧은 머리가 싫어 다시는 어깨선 위로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로도 당연히 짧게 머리를 자른 적이 없었다. 잘라도 쇠골 뼈 아래로 유지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상당히 짧은 머리였다. 보통은 그렇게 자르고 나면 꼬리뼈까지 머리가 내려와야 자르곤 했다. 주변에 내가 짧은 머리인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자르고 싶어 졌다. 긴 머리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오랜만에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게 또 쇠골 뼈까지 왔었나 보다. 머리를 자르고 쇠골 뼈까지 오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머리지만 누군가 내게 지금 내 머리가 긴 머리라고 했다. 스치듯 들은 그 한마디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나름대로 상당히 짧게 잘랐다고 잘랐는데,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머리를 많이 잘랐냐고 할 만큼 짧게 잘랐는데, 나를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내 머리가 긴 머리였구나. 이상하게도 그 말 한마디가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웬일로 머리를 확 잘랐느냐며, 엄마마저도 내게 무슨 일이 있느냐 물을 정도였는데. 긴 머리였구나, 내 머리가. 그렇게 한참을 생각해보다 갑자기 머리를 더 짧게 잘라보고 싶어 졌다. 이상하게도. 그날로부터 며칠 후, 나는 엄마와 함께 미용실로 가, 댕강 턱까지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다. 기르던 앞머리도 도로 짧게 잘라버렸다. 원장님이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하면서도 나는 나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게 맞는 거냐고. 여태껏 살면서 짧은 단발은 상상조차도 하길 거부하던 내가 갑자기 정말 짧은 단발머리라니. 나 정말 괜찮은 거냐고, 나는 내게 물었다. 정말로 괜찮은 건지 몇 차례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는 것은 아니니까. 언제나 늘 무슨 일이 있었고, 언제나 늘 나를 부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끔 세상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 일이 항상 있었다. 그래서 언제도 괜찮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단 한 번도 짧게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머리를 자르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그냥 긴 머리도 아니고 상당히 긴 머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던 내게 단발머리는 대단한 일이다.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일이기도 했기에. 머리를 짧게 자른 지 일주일 즈음의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왜 머릴 짧게 자르고 싶었는지를 모르겠다. 내가 정말로 괜찮은 건지 조차도.
댕강, 어쩌면 나는, 나를. 내가 기억하는 많은 것들을, 잘라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