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의 휴식기를 끝내고, 다시 나로 살아내려 한다.
나는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다. 그리고 다시 사랑을 했고, 더 큰 이별을 했다. 이별과 함께 별도 잃었다. 나 자신도 잃어버렸다. 그렇게 돌고 돌아 긴 방황의 끝에 나의 자리를 찾은 줄 알았다. 나의 집이 되어주겠다고 한 그 사람에게 기대어 남은 날들을 보내려 했다. 잔뜩 사랑받으며 보낼 줄 알았다. 꿈은 역시 꿈일 뿐이었다. 꿈이 현실이 될 순 없는 건가 보다. 나를 얻으려 한 모든 거짓에 속았다. 그의 말이 다 진실인 줄 알았다. 정말 나는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믿었다. 그 사람이, 그 사랑이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 믿었다. 하지만 역시나 꿈은 꿈일 뿐이었고, 겁에 잔뜩 질린 채로 도망쳤고,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과거에 멈춰있었다. 그러던 중에 일어난 사고로 가뜩이나 망가진 몸은 걸음을 걷는 일마저 고통이 되어버렸다. 우스갯소리로 걸음마 연습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 정말 걸음마 연습이었다. 다친 다리를 걷는 것과, 다시 세상에 홀로 설 연습. 두 가지를 한 번에 해야 했다. 생각보다도 힘들었다. 세상 앞에 홀로 서기가 무서워 잡았던 손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손인 줄 몰랐던 과거의 내가 아팠다. 그리고 나는 열심히 걸음마를 뗐다. 서른이 넘어 걸음마를 떼는 일이라니. 누가 들으면 정말 배를 잡고 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말 내게는 그 시간들이 아팠다. 자주 넘어졌고, 자주 아팠다. 한걸음을 떼는 일이 버거웠다. 병원에서 돌아와 방에서 화장실을 가는 일조차도 내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정도였으니까. 아니 어쩌면 세상을 향해 나를 꺼내 놓는 일이 가장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은 그 걸음마를 위해 걷는 걸음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고, 넘어지는 일이 줄었다. 나를 뱉기 시작한 순간부터 진짜 걸음마가 시작된 것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다른 사람 말고, 나. 나를 보는 법. 그렇게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대문 앞, 대문 밖, 아파트 단지. 조금씩 바깥을 향해 갔다. 하지만 넘어져도 금세 일어나던 어린아이였던 나와는 달리, 지금의 나는 아주 오래 아파트 단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다친 다리보다, 다친 마음이 그랬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이별을 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몸이 부서져라 잊으려 일했던 내게 던진 회사의 실수들이 나를 자극했고, 그 실수들에 나는 자주 넘어졌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상당히 불편해졌다. 회사는 잘못을 인정했고, 나는 쿨하게 돌아섰다.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다시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다친 다리 탓을 하면서 다친 마음을 애써 숨겼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다리를 핑계로, 내버려 두었던 나를 다시 찾으려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했다.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는 계속했지만, 나를 밖으로 나오게 할 수는 없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10년 가까이 해왔던 내가,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려하니 방법이 없었다. 세상은 내게 걸어왔던 곳으로 돌아가라 했다. 내가 있던 길목 어디쯤에 있는 그곳에서는 나를 애타게 불렀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다친 마음에 소금을 뿌리고, 후추를 뿌리고, 이제는 고춧가루를 뿌리겠다는 심보인가 하는 생각에 다시 나는 주저앉았다. 돌아가지 않고, 나를 뱉어낼 방법은 글을 쓰는 것, 사진을 찍는 것 말고는 없었다. 허무했다.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던 일들은 내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걸어온 일에서 파생된 작은 샛길로 들어서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세상 밖으로 나를 꺼내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다시 그것에 집중했다. 어쨌든 내가 걸어온 길에서 파생된 길이라 그런지, 당연히 나를 반겼고, 함께 걷자고 손을 내밀었다. 나를 끌어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 것도, 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길을 걷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 시작점이 같은 곳이니 분명 금세 적응할 수 있겠지 싶었다. 다친 몸도, 다친 마음도 세상 밖으로 완전히 꺼내 놓을 수 있는 날이 언제 올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까지 숨어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내일 다시 나로 살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려 한다. 넘어지지 않고, 천천히 오래 그 길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길. 다시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리지 않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다시 꿈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보통의 사람들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