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 시

스치듯 들어온 시 한 편

by maudie

취향이 비슷한 동갑내기. 책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취향이 같았지만, 장르로 나뉘었던 우리는 우연히 만난 동네 책방에서부터 취향의 결이 같아지기 시작했다. 아주 우연히 걷다 만난 동네서점에 의해 결이 비슷해졌다. 원체 확고한 취향을 가진 내게로 친구가 물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종종 만나면 동네 책방을 찾아가곤 했다. 그렇게 지역에 따라 다른 서점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수원에 브로콜리 숲이라는 동네서점을 찾아가게 되었다. 혼자서는 종종 갔었던 곳이지만, 그곳을 친구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이미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영화 한 편을 보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기대하고 있던 브로콜리 숲으로 이동했다. 행궁동에 위치한 작은 서점이지만, 취급하는 책의 종류가 상당히 다양한 편이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우리는 각자의 취향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책의 문장들 중 한 문장이 마음에 들면, 더 이상의 고민 없이 구매를 하는 편이지만 어쩐지 이번에도 그런 책을 만나지 못했다는 마음에 아쉬웠다. 친구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보다 맨 처음 동네책방을 갔던 곳에서 만나 종류별로 사는 것을 기대하던 손으로 직접 만든 책을 만났다. 아이디어스에서도 책을 판매하시던 작가님이셨는데, 신간을 만드셨고, 그것은 이미 타 지역에서 구매해 친구에게도 선물했고, 다른 서점에 재고가 없어 사지 못했던 다른 책들까지 해서 그 작가님이 만든 일곱 권의 책을 모두 구하게 되었다. 놓칠 수 없어 손에 쥐고 계산을 하려던 때에 눈에 들어온 천 원짜리 시. 시의 내용은 랜덤이고 1장당 천 원이었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시를 랜덤으로 만날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고, 가치가 있다 생각했다. 우리는 바로 천 원짜리 시를 골라 계산대 위에 올렸다. 예쁘게 포장해주신 덕분에 그대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것을 열어보지 못했다. 아까운 마음에.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천 원짜리 시는 잠이 미뤄둔 채 현실로 돌아왔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가방에 넣어둔 책들이 생각나 정리를 시작했다. 예쁘게 포장해주신 포장지 속에서 책들과 천 원짜리 시를 꺼내 들었다. 잔뜩 기대에 부푼 채로 시를 펼쳐 들었다. 사실, 미발표 시인 데다 랜덤으로 그냥 뽑은 거라 조금 걱정도 됐다. 문장의 결에 상당히 예민한 편인 나는 덕분에 취향이 확고했고, 나의 취향과 맞지 않으면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는 때문이었다. 걱정을 비웃듯 툭. 그 시는 나를 울렸다. 과장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기대도 기대였지만,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강한 성격 탓에 이런 결과는 생각지 못했다. 근데 시 한 편에 울컥 눈물이 터졌다. 기대 이상이었다. 기왕이면 몇 개 더 뽑아올걸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다.




호더

네모 방
온갖 잡동사니
버리지 못하는 성격에
방전된 기기들
mp3엔 오래된 노래
이젠 듣지도 부르지도 않는 CD
수남장의 일부를 차지한 물건들

내 방
열린 창문
반지하에 사는 담배 연기
구역질을 하고
닫힌 창문
침대는 그대로
숨죽여서 했던
애정 어린 말이


물건 사이에

먼지처럼 앉아있어
털어내려 해도 어딘가

끝끝내 쌓여

네 방

흐릿한 기억 속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너에 대한 물건들

살아남은 인형 여러 개

몇 개는 눈이 없고

몇 개는 코가 없고

몇 개는 인사를 한다


- 김 가지 (미발표시 21년 2월 기준)



몇 번을 곱씹어 다시 읽어도 마음 한 구석에 괜히 짠 파도가 밀려온다. 철썩. 파도가 나를 삼킨다. 울컥한 밤, 시를 안고 젖은 눈을 감는다. 밤에 담은 눈물이 넘치기 전에 눈 속에 가둔다. 흩어지지 말고, 스며들라고.


시 한편에 밤이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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