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선물
요 근래 만난 한 권의 책을 두고 나는 여러 번 곱씹는 중이다. 한 페이지를 며칠 내내 곱씹었다. 어떤 마음일까. 대체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을 하면 이런 문장들을 쓸 수 있는 걸까, 아니 이런 문장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쓰는 것을 주로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읽어 삼키는 문장보다는 씹어 뱉는 문장을 선호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랬다. 문장을 뱉는 것에 더 집중을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는 책을 만났다.
보통 제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습관이 들어있지 않은 나는 이동하면서 책을 읽는다. 여행을 한다던가,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 그렇게 어디론가 떠나는 때에 책을 조금씩 자주 오래 읽곤 한다. 그래서 사실 책을 펼치기까지의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는 편이다. 하지만, 한번 책을 펼치면 잘 덮지 않고 후루룩 읽는 편이다. 곱씹어 보고 싶은 문장이 있는 경우에는 사진으로 그 페이지의 내용을 찍어두고서 다음 페이지를 읽는 편이다. 읽히지 않는 책은 그대로 덮어, 다시 펼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책이라는 것은, 글이라는 것은. 잘 읽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읽히지 않는 책은 아무리 잘 써도 읽어주는 이가 많지 않다. 우선, 나의 경우 확실히 그러니까. 나의 경우 오래 멈춘 책을 다시 펼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번 버퍼링이 걸리면 다시 펼치지 않는 버릇 아닌 버릇이 있다. 하지만, 자꾸 멈추게 되었다. 이상하게 이 책은, 나를 자꾸 멈추게 하였다. 잘 읽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페이지의 그 문장을 계속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마치, 같은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듣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이런 글이다.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음악을 듣고. 한번 마음에 든 것은 질릴 때까지 보는 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책은, 그런 문장은 아쉽게도 영화나, 음악만큼 많이는 만나진 못했던 것 같다. 여러 번 같은 책을 펼친다는 것은, 그것도 같은 페이지를 반복한 다는 것은, 나에게 꽤나 신선한 일이다. 그 책이 바로 '내 사랑은 소품처럼 놓아두어야지'다. 최근에 이 책을 읽는 도중 참지 못하고,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페이지에서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나는 또 머무르는 중이다.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 책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또 참지 못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별 선물 _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를 읽고
언젠가 죽어 땅속에 묻힌다면 내 몸에 꽉 맞는 소박한 관에 들어가고 싶다. 육신의 구석구석까지 바짝 밀착시킬 수 있도록. 혼자 남겨진다는 건 죽어서도 너무 외로운 일일 테니까.
그런데 이별은 내게 너무나 광활했다. 속절없이 적요하고 망연스럽다. 나를 감싸주는 것들이 전혀 없었다. 이별이란 생에 함몰된 죽음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닌가. 죽고 또 죽어도 하루를 더 살아내야 하는, 그래서 하루만큼 더 죽어야 하는 종언의 장편. 만인에게 나의 유골을 드러내야 하는 그런 죽음이 싫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 삶에 선물 아닌 것이 있었던가. 어쩌면 슬픔은 남겨진 이를 위해 남겨둔 전리품, 혹은 기념품 같은 것. 그래서 침대 맡에 놓아두고 매일 밤을 비감스레 쓰다듬었지. 밤새 사랑스레 바라보았지.
위의 글이 바로 소개하고 싶었던 페이지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나를 노트북 앞에 앉게 한. 차마 넘기지 못하고 같은 페이지에 머물게 한.
슬픔도, 어쩌면 선물일 수 있겠다는 그 말이,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 책을. 분명, 자주 멈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반복하게 될 것이다. 곱씹고 싶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하는 것처럼.
사실, 칭찬에 익숙한 편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추천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물론, 추천을 받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다. 각자의 취향이 있고, 각자의 어떤 것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 조심스럽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이,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추천을 한다고 해도,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테니. 하지만, 분명 당신의 마음에 괜한 바람이 일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어떤 것을 전해주고 싶었는지, 어떤 것이 전해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뭘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 그냥, 어쩌면 나로 인해 이 책을 만나고, 내가 느낀 것들을 같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란 잔뜩 들뜬 마음으로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