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용산으로 가 아침 일찍 영화 한 편을 보고, 대충 끼니를 때우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나오던 길에 아주 자연스럽게 서점으로 들어갔다. 평소 그 친구도 나도 책도, 서점도 좋아해서 만나면 늘 꼭 서점을 들르곤 했던 때문인지 서점을 목적지로 두지 않고도 가게 되었다. 어쨌든 들른 서점에서 열심히 새로운 문장을 찾다가, 읽고 싶었던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그 책은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건네는 다정>이라는 책이다. 인스타로 팔로우 중인 하태완 작가님의 신작이었다. 책을 여러 번 살까 말까 고민을 하다 실물을 만나면 그때 결정을 하자 했지만, 책이 마음에 들어도 왠지 오늘은 가방도 작은 것으로 메고 오고, 이 추위에 손에 쥐고 가기 망설여졌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펼친 페이지의 이야기가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그 페이지의 이야기는 대충 이랬다.
부모님과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러 갔다. 옆 테이블에는 죽고 못 사는 듯한 커플이 하나 있었다. 그날은 남자의 생일인 듯 보였다. 두 사람의 식사가 끝날 때쯤 여자가 남자에게 손가방을 하나 건넸다. 그리 좋은 게 아니라며 쑥스러운 듯이 선물을 건네자 이번엔 남자가 얼른 자신의 가방에서 꽃다발과 선물을 건넸다. 그리고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뭘 해도 마냥 좋을 날에 온종일 나랑 같이 있어줄 네가 오히려 선물을 받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준비했거든."
나는 이 문장을 보고 당장에 책을 들고 친구 옆으로 가 그 페이지를 읽게 했다. 그리고는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책의 재고가 이것 딱 한 권이었다. 하지만, 날이 너무 추웠고, 작은 핸드백 하나만 메고 온 탓에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고,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야, 일단 내려놔. 어차피 우리 지금 나가야 하니까. 카페를 찾아가 커피를 마시고 와서 네가 다시 기차를 타고 내려가기 전에 이 책이 남아있으면 그때 사는 거야. 콜?"
책 재고가 이것 한 권뿐이라 남아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잊어버렸다. 친구와 서점을 빠져나와 인스타로 봤던 카페를 찾아갔다. 커피를 한잔씩 마시는 걸로 아쉬워 두 잔씩 마시고, 한참을 장난치다 다시 용산역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허기를 채운 다음 쇼핑몰을 한참 돌아다니며 쇼핑을 했다. 내내 좋던 컨디션이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하고, 말수가 줄었다. 내 표정이 안 좋았는지 친구는 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슬슬 골반이 돌에 부딪히는 것 같은 통증이 오기 시작했고, 예약한 기차를 취소하고 가장 빠른 시간의 기차로 바꿔 예매했다. 정신이 없는 그 와중에 친구가 나를 끌고 서점으로 갔다.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안 되겠다고 말렸지만, 친구는 그래도 가보자며 앞장섰고, 나는 설마 있겠어라는 마음으로 따라갔다. 신기하게도, 반나절 이상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책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아침보다는 조금 손이 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친구는 잽싸게 그걸 냉큼 쥐고 카운터로 달려갔다.
"새해 선물."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연거푸 일어나서 당황스러우면서도 너무 기뻤다. 통증이 잠시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너무 고맙단 인사를 끝내자마자 기차 시간이 임박해 우리는 바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픈 채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친구는 내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걱정된다며 나를 확인했다. 아픈 것도 잠시 얼른 그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문장을 읽어보기 위해 펼쳐 들었다가 그대로 깜빡 잠이 들었다. 겨우 추스르고 한참을 돌아 집으로 왔고, 다는 다시 그 페이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 페이지만 찾아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다른 페이지는 넘겨보지도 못하고 책을 덮었다. 정말로 저렇게 예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가 그렇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