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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Nov 19. 2020

정동진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와 정동진에 간 적이 있다. 저녁에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정동진행 마지막 기차를 타고 넘어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도착한다. 정동진 역에서 내리면,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밤바다에 철썩이는 파도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 어두운 밤에 도착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역 앞에서 여럿이 함께 머무르기도 하고, 각자의 방향대로 떠나가기도 했다. 정동진역을 나오면 바로 옆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다. 이 카페는 새벽 일찍부터 문을 열기 때문에 기차에서 내리면 바로 이용이 가능했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피곤한 몸을 풀며,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안은 따뜻했고, 사장님은 그 새벽에 몹시 피곤하셨을 텐데도 무지 친절하셨다. 우리는 앉자마자 따뜻한 음료를 시켜 언 몸을 녹였다. 금세 노곤해졌다.


어느 정도 몸을 녹이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볼 정신이 생겼다. 기차를 타고 이동한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고, 사람들이 많아 내내 신경 썼더니 조금 피로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탓일까, 해가 뜨기까지의 시간이 아직 넉넉히 남아 우리는 카페에 좀 더 머무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바닷가로 나가기엔 아직 너무 이르고, 너무 컴컴했고, 또 너무 추웠다. 카페에 앉은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때의 나는 많이 지쳤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래서 생각이 참 많았다. 그때 글에 대한 욕심이 더 생겼던 것 같다. 오늘 우연히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그때 강릉 여행 중에 내가 했던 말대로 내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무슨 말을 했던 걸까. 기억이 나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냥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에겐 가족도, 일도, 사랑도. 심지어 친구와 관련된 일까지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고,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았던 시간들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아 , 내가 저 사람보다는 좀 나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위로가 되고 싶었다. 위로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가 마음에 닿아 작은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다.


강릉의 여행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다른 사람에게 부족하지만 은근한 위로가 되고 싶다고. 가끔 보면 위로를 강요하는 글들을 보게 되면 뭔가 가끔 기분이 묘했다. 뭔가 위로가 되지 않아도 위로가 된다고 말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글을 보면 숨이 오히려 꽉 막히는 기분이 들어 피해왔다. 왠지 모르게 나와 생각이 다른 그 위로가 조금 불편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분명 있을 것 같다.


나는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한다. 사진을 찍고 그것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로 조금 더 열심히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글로 내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인스타그램의 특성상 긴 이야기를 하거나, 깊은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곳저곳에 그냥 메모하듯 이야기들을 담았다가, 브런치로 옮겨오게 되었다. 친구와는 그때 그런 이야기들을 나눴던 것 같다. 아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은근한 위로가 되는,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다 읽고 나면 조금은 마음에 남는 글을 쓰고 싶다고.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아침 해를 만나러 바닷가로 이동했다. 아쉽게도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기다려도 해는 볼 수 없었다. 뜨지 않는 해를 구름 뒤로 넘겨보고 아쉬운 마음으로 한참을 머뭇거리다 아침을 먹으러 다시 역 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강릉에 왔으니 순두부를 꼭 먹어야 한다며 아침에 문을 연 순두부 집을 찾아갔다. 해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초당순두부로 달랬다. 추위에 떨어서 그랬는지, 단순히 배가 고파서였는지 그날 아침의 순두부는 정말 맛있었다. 텅 비어버린 마음까지 채워줄 만큼 따뜻하고, 든든했다.


시간도 많이 남았고 배도 든든히 채웠겠다, 이대로 서울로 돌아가기 아쉬웠던 우리는 바닷가를 다시 걷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잠깐 걸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급하게 다시 역으로 가야 했다. 비에 쫄딱 맞으며 역으로 가고 있는데, 주차장에서 우릴 본 아저씨가 급하게 우릴 불렀다. 우리에게 감기 걸린다며 차에 있던 여분의 우산을 흔쾌히 빌려주셨다. 모르는 아저씨의 친절이 처음엔 조금 무섭고 당황스러웠지만, 정말 정말 감사했다. 그냥 마음이 따뜻한 아저씨였다. 잠깐의 이야기를 나누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명함과 우산을 받아 들고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갔다.


비록 바다를 바로 앞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창가에 앉으면 보여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비는 금세 그쳤지만 밖은 많이 추웠고, 아무리 생각해도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쉽지만 기차가 오기 전까지 커피 한잔 하며 따뜻하게 있다가 가기로 했고, 친구는 피곤했는지 이내 잠이 들었다. 우리는 몸을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긴 기차여행을 했다.


왕복해서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는 얘기를 듣고 기분이 좋았다. 내 이야기들을 기억해준 거니까. 나도 기억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친구는 기억했고, 내게 넌지시 던져줬다. 나는 다시 그 시간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시간이 없고, 바쁘다는 핑계를 댈 직장 생활을 지금은 하고 있지 않으니, 이걸 계기로 자주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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