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udie Nov 20. 2020

걷는다는 것

나를 위하지만, 내게는 위험한 것.

나를 위한 일이지만, 내게는 위험할 수도 있는 것.



나는 걷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운동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걷기를 좋아하기보다는 그냥 무작정 걷는 것을 좋아한다. 산책에 가깝다고 하겠지만, 누군가는 내게 다리를 혹사시키는 걷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일 수도 있고, 내게 가장 큰 스트레스 해소법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정도로 어떤 때는 몸살이 나 앓아누울 정도로 걸을 때도 있다. 물론 그날의 스트레스 정도의 차이겠지만.


나는 일을 하면서 한쪽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나는 케이크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했었다.  그곳은 대량으로 케이크를 생산하는 공장형 회사였다. 온종일 서서 일했고, 미끄러운 바닥에서 일을 했다. 쉽게 알고 있는 티라미스나 고구마 케이크 같은 크림형 무스케이크를 냉동하여 제조하는 회사였다. 그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생각보다 몸이 많이 망가졌다. 제과제빵 일을 전공한다고 하면 다들 매장에서 생크림 케이크를 만드는 정도의, 빵을 반죽해 만드는 정도의 일을 떠올릴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의 제과제빵 관련 업종 종사자들은 대부분 무거운 것들을 들고 옮기고, 생각보다도 위험하지 않을 것 같지만 위험한 일들을 한다.


보통은 회사에서 설거지나 다른 업무들은 도와주시는 이모님들이 계셨다. 그분들도 케이크를 포장하는 업무가 주 업무였기 때문에, 바쁘면 직원들이 바로바로 설거지를 해야 했다. 아주 바쁜 시기였고, 원래 나는 성격이 급해 그날도 역시 사용해야 할 볼을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30킬로가 넘는 볼을 들고 설거지를 하다가 그대로 넘어져 인대를 끊어먹었다. 그러고 나서 몇 년이 지나고 몸조리를 하던 중 인대를 한번 더 다쳤다.


케이크 회사에서 다쳤던 발목의 인대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고 너덜너덜한 정도로 붙어다. 걸을 때마다 발목이 흔들릴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상태로 서서 몇 년을 일해왔지만 버틸만했다. 하지만 그 약간의 남은 인대는 전동 킥보드 사고로 완전히 끊어졌다. 홍대에서 친구와 기분 좋게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던 중에 일어난 사고였다. 전동 킥보드가 앞도 보지 않고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로 그대로 부딪혔고, 그 자리에서 넘어져 한쪽 인대가 마저 끊어졌다. 요즘 전동 킥보드 사고가 많아서 그날의 일도 있기도 했고, 걸을 때 매우 긴장한 상태로 걷고 있는 것 같다. 간단하게 볼 일이 아니다. 전동 킥보드 사고로 인한 사망사고의 빈도가 잦아지고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한 것 같다. 나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발목 인대를 두 개다 끊어먹었고, 사실 걷는다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걷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의 대여섯 배는 위험한 것 같다. 수술을 하지 못하는 상태여서 피딱지로 겨우 고정이 된 발목이라 사실은 조금만 방심해도 위험해질 수 있지만, 걷는 것을 포기를 할 수는 없다.


이 정도는 뭐 위험하지 않으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발목을 잡아주는 보호대를 착용한다거나, 신발을 그에 맞는 것을 착용하면 일상생활에는 큰 무리가 없으니까. 걷는 것도 사실 크게 무리가 없다. 적당한 선에서 걷기만 한다면. 근데 사실 한번 걷기 시작하면 온종일 걷는 바람에 조금 걱정이다.






문제는 발목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문제가 있어서 사실 걷는 것도 남들보다 빨리 지치고, 당시의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나는 숨이 차면 안 된다. 뛰어다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일. 혹은 등산을 한다거나, 무거운 것들 드는일. 자전거를 타는 것조차도 조금 무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등산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일. 건강을 위해서 하는 일이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고부터 조금 무서웠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우리 가족은 여행을 자주 다녔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수도권의 모습과는 다르게 산이 많은 곳에서 자랐다. 높은 산이 많았고, 부모님께서 산으로 다니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아주 어릴 땐 산에 가는 일도 좋다고 따라다녔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산에만 올라가면 울면서 혼자 차에 가서 있거나 산 아래에 있는 공원에서 가족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부모님은 살이 찌니 힘든 거라고 했고, 나도 운동부족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몸이 거부하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수술을 해도 70프로가 훨씬 넘는 확률로 재발의 위험이 있었고, 수술 후 최소 1년이라는 시간 동안은 누워있기만 해서도, 앉아있기만 혹은 서있기만 해서도 안 되는. 하루 종일 몸을 앉았다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서 움직여줘야 하는 상태로 재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당연히 하고 있던 케이크를 만드는 일 또한 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1년은 꼬박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정말 아주 것도. 숨이 찰 정도의 일은 그 어떤 것도 해서는 안되고, 운동도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재발할 확률이 70프로가 넘는다.


나는 굳이 수술을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도 아프고, 저렇게 해도 아프고. 수술을 해서 괜찮아진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도 역시 등산도 하면 안 되고, 뛰는 것도,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무거운 것을 드는 일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수술을 해도 지금 하는 것을 하면 안 된다고? 수술 후 재활을 위한 노력이라는 걸, 긴 시간을 투자해한다고 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확률 70프로. 죽는 것도 아닌데 굳이 해야 할까. 최소 1년이라는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정말 가만히 숨만 쉬라는 얘긴데. 숨이 찰 정도의 어떤 일만 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니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수술은 하지 않았고, 나는 지금도 건강히 잘 지낸다. 건강히 는 모순인가.





어쨌든 이런 몸 상태로도 나는 오늘도 걷는다.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빨리 걷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기에 적당한 속도로 오래 걷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생각이 많은 날에는 더 많이 걷고는 한다. 아는 동생이 항상 내게 말한다. '누나는 걷는 게 아니라, 몸을 혹사시킨다. 그건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몸상태를 하고도 걷는 걸 포기 못하는 나도 참 대단한 것 같다. 근데 왜 살은 빠지지 않을까. 그건 정말 화가 나. 노 이해.


날이 좋은 날은 하늘을 보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무작정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약간의 산책에 어울릴 만한 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노래를 골라 반복 구간을 선정한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공원을 걷다 보면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냥 노래에 온 마음이 집중될 뿐. 아무래도 직업의 특성상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무례하거나, 무식하거나.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기 전에 내 자존감까지 떨어지게 하는 사람들. 카페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 세상 무례한 사람은 다 만나는 것 같다. 트라우마가 생겨 일을 쉬고 있을 정도로. 그런데다 스케줄 근무를 하고 있어 친구들과 약속도 쉽게 잡지 못할 때는 정말 속이 답답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럴 땐 그냥 무작정 걸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고,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은 날에도. 비만 오지 않으면 걸었던 것 같다. 물론, 연애를 할 땐 남자 친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였지만 에엠.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이제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왜 나는 내 단점을 지금 이렇게나 열심히 나열하고 있는 걸까. 뭐 이런 상태의 나라도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현타가 온다. 뭐 이런 상태의 몸이 어도 아무도 걱정 안 할 만큼 겉으로는 매우 매우 건강하니까. 안쓰럽게 좀 봐줬으면 좋겠는데, 겉으로 너무너무 멀쩡해서 사실 이걸 말해도 아무도 안 믿겠지.







아!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앞서 얘기했듯,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수가 없다. 그건 아무리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라도, 이골이 나 있다고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가만히 서있는 것보다 힘들 때가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웬만해선 자리가 있어도 가까운 거리는 절대 앉지 않을 정도로.  보통의 사람들은 '왜 자리가 있는데 앉지 않을까.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잠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려고 앉는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사람도 있다.


계단을 오르는 것도 경사지를 오르는 게 훨씬 덜 힘들 정도로 매우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경우에는 한 번씩 노약자들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물론 컨디션이 매우 매우 좋은 날에는 그냥 계단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웬만하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그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용시설이고, 나도 세금을 내고 있는데 이용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겉으로 봤을 때 매우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처럼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니까.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에스컬레이터가 없고 도저히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으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나는 항상 눈치를 봤다. 대놓고 욕을 하는 어르신들도 있고, 이상하게 보는 아저씨 아줌마들도 있다. 들으라는 식으로 뒤에서 떠드는 아줌마들을 보면 진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나보다 본인들이 더 건강하면서 당신네들은 이걸 왜 이용하냐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어쩌다 얘기가 이상한 흐름을 타고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분명 걷는 게 좋다고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어쨌든 이런 경우의 사람도 있으니 지나친 편견과 무례는 삼가줬으면 좋겠다. 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지루한 넋두리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찡끗 ; )




작가의 이전글 정동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