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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Nov 19. 2020

오만과 모욕

나만 참으면, 나만 견뎌내면, 이 시기만 지나면, 모든 게 해결되고 모든 게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그건 내 자만과 내 오만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모욕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잔인하고 교활해진 것들에 대해 나는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 유연히 부러지지 않고 늘어나려 애쓸수록 나는 더 강하게 찢어져갔고, 찢어지다 못해 결국 부러져버렸다.


괜찮을 줄 알았고 ,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부러진 건 다시 붙지 않고 아물지 않았다. 부러진 부분이 상처로 곪고 또 곪아 괜찮아지지 않았다. 시커멓게 헐어버린 마음을 이제야 들여다보고 잘못된 걸 알았을 땐, 이미 너무 먼길을 돌아왔고, 너무 많이 다쳤다.


얼마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모르겠고 얼마나 더 다칠지도 알 수 없다.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내가 나를 괜찮다는 말로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졌다. 믿음이 과했던 걸까. 아님 이 나이 먹도록 약아지지 못하고 여전히 순진했던 걸까.


사람을 믿는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숱하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일들을 겪어내고 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믿고 괜찮아질 거다. 지금만 지나면, 조금만 지나면, 이것만 지나면. 그런 헛된 생각으로 나를 외면했던 것들이 나를 찌르고 부러뜨렸음에도. 괜찮아질 거라고, 지나갈 거라고. 언젠간 사랑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안타깝고. 그런 내가 너무 아리다.


이제 더는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게 된 마음에게 잠시 쉼을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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