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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Mar 26. 2022

무심한듯 다정하게

뭐하냐는 물음을 잘못 들은 걸까. 너는 내게 "나도 좋아해."라고 말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 자바칩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뜬금없는 얘기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잔뜩 기대한 마음이 빵 터져 버렸다. 웃음기와 장난기가 가득한 우리의 대화는 점점 산으로 갔다. 어디까지가 장난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웃었다면 되었다는 듯 이야기를 나눴다.


세찬 비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소리에 새벽 늦게까지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 때문이었을까. 자꾸만 불안해하는 내게 장난을 치고 웬일인지 늘 일찍 잠에 들던 너는 내가 잠들어 답을 하지 못할 때까지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 까무룩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아침이 왔고 여전히 비는 나렸다. 그리고 핸드폰엔 내가 잠이 들고 난 후에도 보낸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덕분에 잠에 들 수 있었다고 고맙다는 내게 너는 고마운 일이 아니라는 듯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고 나는 엄청 큰 일을 한 거라고 고맙다 말했다. 그 말에 으쓱하는 네가 너무 어이없어서 아침부터 새어 나오는 웃음에 괜히 또 고마웠다.


한참을 얄미웠다가 한참을 고마웠다가 한다. 참 이상한 인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상한 타이밍에 늘 고마운 일이 생겼다. 너는 신기하게도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확실히 고마운 사람. 몹시 차가운 듯 굴다가도 세상 다정한 사람.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러운 사람. 그래서 이상하게 늘 고마운 일이 생겼다.


너의 별일 아니라는 듯한 그 무심한 행동에 감사하고 감동한 지난 시간들이 앞으로도 꾸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멀어지지 않고 적당히 가깝게 그렇게 오래오래 봤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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