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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Mar 21. 2022

울보

나는 울보다. 기쁜 일로 울어본 적은 의사 선생님께 내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얘길 들었을 때뿐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화가 나서 울고 슬퍼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서운해서 울고 울려고 울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들에 내가 들어가 내 이야기로 만든 다음 운다. 다들 내가 너무 울어서 툭하면 울고 또 우는 애라고 한다. 나도 울고 싶어서 우는 건 아닌데. 그냥 뭔가 감정이 커지면 눈물이 나는 것 같다. 보통 그러면 기쁠 때도 눈물이 난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기쁠 일이 없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툭하면 우는 애. 감정이입을 너무 하고 몰입을 너무 해서 별 것도 아닌 것에도 우는 애. 그런데 왜 기쁜 일에는 그렇게 어려운 걸까. 우는 것만큼 잘 웃기도 하는 난데. 사람들은 웃는 모습보다 우는 모습을 더 잘, 더 오래 기억하는 것 같다.


오늘 이사를 하느라 한동안 보지 못했던 드라마를 몰아서 봤다. 역시 또 내내 우느라 정신없었다. 멀리 조카 돌잔치 때문에 다녀온 뒤로 피곤하기도 했고,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서 힘들었기도 했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워 대충 정리를 끝내고 누워 본 드라마를 보는 동안 장면 장면마다 내가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가 주인공이 됐다. 내가 겪은 것도 아닌데 울컥하는 마음을 눈치채면 이미 눈물이 한참 흘러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왜 울고 있는 거지? 하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드라마에는 집중이 안됐다. 정말 나는 왜 우는 걸까. 별것 아닌 대사에 주인공이 울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울고 있는 걸까. 대체 나는 왜 우는 걸까. 뭐가 그렇게 슬펐던 걸까.


한참을 생각해봐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내린 결론은 나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할 필요 없다는 아주 뜬금없는 것이었다. 내가 왜 우는지, 머릿속이 아니라 마음에서 울컥 울음이 쏟아지는 이유가 뭔지 알지도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감정에 나를 쏟아낼 필요는 없다는 결론. 사실, 이 말도 안 되는 결론도 이해가 안 간다.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내가 왜 하고 있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다만 그저 이런 생각과 감정이 들었다는 걸 쏟아내지 않으면 오늘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남긴다.


내일의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던, 내 이야기던 그저 우는 것보단 훨씬 더 많이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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