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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Apr 26. 2022

사이 책방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으면 꼭 써지지가 않더라. 글은 그런 것 같다. 쓰려고 마음을 먹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은 그 순간에 바로 써야 한다. 그래서 어쩌면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글을 쓸 수 있게 항상 준비를 해 둬야 하나 싶다. 


이사를 준비하면서부터 이사를 오고, 새로 취업을 준비하는 지금까지 사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에 섣불리 어떤 이야기도 뱉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별 생각이 없이 그냥 툭툭 내뱉던 아주 개인적이고 아주 소박한 이야기들도 웬일인지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내가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법으로 해야 누군가에게 새롭게 읽히거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내게 던지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이 해방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더 이상 글이 해방이 아니었다. 현재로부터 도망하고 나를 뱉어내는 것으로 나를 위로했던 글이 더 이상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데, 어디서부터 어떤 게 바뀐 걸까. 


그러던 중에 내가 이사를 오면서부터 더 이상 서점에 가지도, 카페에 가지도, 산책을 하지도, 책을 읽지도, 음악을 듣지도, 영화를 보지도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게 가장 중요했던 어떤 것들을 나도 모르게 멀리하고 있었다. 내게는 서점도 카페도 산책도 책도 음악도 영화도 모두 글이었다. 사랑하는 것들을 멀리 하면서부터 모든 게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 같다. 어떤 것도 할 용기가 없어진 걸까. 그저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뿐인 걸까. 사랑하는 것들을 멀리하면서 나는 나를 잊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책을 하기도 하고, 드라이브를 하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어보고.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좋아하던 책이 어느 순간부터 읽히지 않고, 읽으려 들면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다시 시도를 여러 번 했으나, 역시 실패였다. 책이 다시 읽힐 수 있으려면 어떤 자극이 필요했다. 산책도 영화도 음악도 하고자 하면 그냥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책은 달랐다. 책을 다시 읽기 위해서 서점을 다시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새로운 책을 만나고, 새로운 문장을 만나면 자극이 되었으니까. 그때처럼 또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나는 곧바로 가까운 독립서점을 찾았다. 가보지 않았던 곳이 필요했다. 새로운 느낌, 새로운 장면. 그렇게 찾아간 곳이 사이 책방이었다.


사이 책방은 대구 팔공산 인근에 위치해 있다. 구미에 있는 독립 책방은 이따금 방문하던 곳이라 그곳을 제외하고 가까운 거리는 사이 책방과 다른 한 곳. 이렇게 두 군데가 있었다. 일단 출발하기 전에 인스타그램에 사이 책방을 검색했다. 집에서부터 차로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에 위치한 서점이라 약간 망설여졌다. 하지만 검색을 하자마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미룰 수 없었다. 동갑내기 사촌에게 전화해 사진을 보여주고, 우리는 바로 그곳을 가기 위해 나섰다. 우리 집에서 외갓집까지 20분남짓. 외갓집에서 서점까지 한 시간 남짓. 늦어지면 서점이 문 닫기 전에 갈 수 없을 것 같아 조급한 마음에 빠르게 준비해 외갓집을 들러 사촌을 픽업하고 바로 고속도로를 달려 서점으로 갔다.


고속도로를 내리고, 팔공산에 들어가는 길은 초록빛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었고, 꼬불꼬불한 길 위에 그 터널은 장관이었다. 서점으로 가는 길은 좁은 산길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했다. 이곳에 서점이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에 네비를 의심을 할 때쯤 서점이 눈앞에 보였다. 서점 옆에 주차공간도 준비되어있었다. 주차는 2-3대 정도 가능해 보였고, 우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서점의 외관에 반했다. 외관을 사진에 담고, 조심스럽게 서점에 들어섰다. 평일 낮은 역시 우리 두 사람이 전세 내기 충분한 조건을 가졌고, 실제로 우리는 그곳을 전세 내듯 한참을 돌아봤다. 책을 한 권 한 권 같은 곳을 몇 번을 다시 봤다. 오랜만이라 신중해지기도 했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기 위해 늘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한 권을 손에 쥐고서 커피 한잔과 자리했다.


서점 안쪽 창가마다 준비된 자리는 가만히 넋을 놓기 충분했다. 바깥에 텐트 같은 공간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창가의 자리가 너무 매력적이라 추천해주시는 책방지기님의 말씀에도 굳이 창가 자리에 앉았다. 마음 같아선 하루 종일 자리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종일 있으라 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운전을 하느라 피곤했던 터라, 손에 쥐었던 책은 읽지 못하고 금세 자리를 떠야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동안 말없이 각자의 여유를 즐겼다.


"혹시 스토리에 저희 서점 해시태그 해주셨어요?"


가만히 넋을 놓고 있던 그동안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어 스토리에 태그를 한 후 업로드를 했는데, 책방지기님이 그걸 바로 알아채셨다. 평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우물쭈물하는 동안 핸드폰을 들고, 내가 자리하고 있는 곳까지 단숨에 오셨다.


"저희 태그 해주신 것 맞으시죠? 이거 이거."

"아- 네." 

"작가님이셨네요!!!! 오오~ 책도 내셨네요!"

"아.. 넵!"


책방지기님은 내가 스토리에 태그를 한 것을 보시곤, 내 피드를 살펴보셨나 보다. 내가 쓴 책을 알아봐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셨다. 책은 어떻게 낸 거며, 어떤 내용이며,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판매에 관한 것도 물어봐주셨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럽고, 얼떨떨하기도 하고,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것들을 물어봐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다 뱉진 못해 조금은 아쉬웠다. 내가 낯을 가리지 않았다면 조금 더 용기가 있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책방지기님이 다른 손님을 맞이하러 가시는 동안 잔에 담긴 커피가 비워졌고, 돌아갈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책방지기님이 강의에 관한 것에도 제안을 주셨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강의라고 하긴 좀 그렇고 내가 가진, 내가 경험한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아직 많이 부족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부끄럽기도 하고, 회사와 일정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감사한 제안이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제안을 받았다는 그 자체로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다. 책방지기님과 나눈 이야기들이 꿈같았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 정말 꿈같았다. 


아쉬움을 남겨두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차에 오르자마자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뱉어냈다. 


"우와- 이서연!!!! 성공했다!!!"


그 말을 뱉자마자 사촌은 빵 터졌다. 그리곤 책 한 권 냈는데, 강의라니 하고 한참을 비웃었다. 나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지만, 비웃다니! 기분 상해서 잘 봐 두라고,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일부러 큰소리쳤다. 책을 한 권이지만 그 한 권 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 비웃음은 분명 적절치 않았다. 암, 그렇고 말고. 그렇게 우리는 차를 돌려 구미에 도착했고,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서 밤 산책을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내 입가가 씰룩댔다. 한참을 여기저기 자랑을 하느라 바빴다. 사실, 책방지기님은 그저 스치듯 하신 말씀이시겠지만, 꿈꿔왔던 장면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 장면을 본 증인도 있으니 분명 꿈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떠들어대기 충분했다. 들뜬 마음에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글을 쓰고 싶었고, 글이 쓰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것들을 멀리했고, 자극이 없었다. 자극이 필요해서 떠난 짧은 여행에 오래 남을 감동을 받았다. 아마도 나는 다시 글을 사랑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마음을 잡고 글을 쓰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서점 여행을 계기로 이렇게 이야기를 쓰고 있으니, 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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