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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Oct 10. 2022

우스꽝 스러운 일기

텅 빈 인사

책을 읽던 산책을 하던 영화를 보던 음악을 듣던 커피를 마시던. 내게 많은 물음과 많은 이야기를 던져주던 것들이 힘을 잃고 무엇을 해도 어떤 흥미도 물음도 생기지 않던 수일이 지났다. 자리에 앉아도 보고, 사람 구경도 해보고, 여행도 다녀오고, 사진도 담고, 그 사진을 만져도 보고. 내게 자극이 되었던 감성을 긁어모으게 했던 그것들이 완전히 힘을 잃었고, 나는 방황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던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게 되었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기 바빴다. 안타깝게도 휴무가 너무 잦은 회사여서 시간이 넉넉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야기도 쓸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몇 년의 시간 동안 내게 충만했고 자신 있던 그것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다. 그리고 대게는 그것들이 사랑에 대한 것임은 확실했다.


20대의 나는 사랑을 쉬지 않았고, 30대가 되면서 나는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 모든 이야기가 언제고 멈춰지지 않을 만큼 충분하다 생각했다. 뻔하게도 사랑을 하지 않은지 시간이 꽤 지났고, 상처를 받은지도 시간이 꽤나 흘렀다. 모든 감정이 무뎌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순간도 있었다. 다시는 이별을 겪지 않겠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이상한 꿈이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만, 여전히 다짐한다. 누구에게도 온 마음을 다하지 않겠다고. 거짓말처럼 모든 고민과 다짐은 한마디에 무너지고, 가려지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분명 남은 사랑은 없다 생각했고, 다시는 같은 물음을 반복하지 않겠다 했다. 덕분에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어져버렸지만,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지키는 일이었다.


'잘 지내?'


그 한마디가 가진 힘은 어마어마했다. 어떤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생각이 나지도 않게 했다. 기계처럼 움직이던 하루가 느리게 흘렀다. 다시없을 거라던 사랑이 아직도 남았는지 마음 한 귀퉁이에서 신음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던 울음은 저 안에서만 가득했다. 바깥으로 나와 내게 인사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을까. 떨리는 마음은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무의미한 어쩌면 건조하고 푸석푸석하기까지 했을 그의 잘 지내냐는 그 물음은 내 상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진종일 그의 물음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쩌면 20대의 마지막 사랑이었던 그 사람은 내게 많은 이야기를 남겨준 사람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처럼 그때의 내가 흐릿하게 재생되었다. 어떤 이야기도 들리지 않고,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영화를 눈앞에 두고 그 속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어쩌면 타임머신을 탄 걸 지도 모르겠다. 혼자만의 상상에 갇혀 괜히 뒷 이야기를 써내려 가다 다시 지우곤 했다. 완성될 수 없을 이야기임을 알기에 더 열심히 지웠다.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온 마음을 내려다 두고 더 이상 내게 답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답을 했고, 역시나 텅 비었던 그 물음은 과거의 그와 함께 금세 사라져 갔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도 놀란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고, 무엇을 해도 그가 따라다녔다. 그와 함께 쓴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이 생기면 마음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울었다 했다. 다행인지 역시 울음이 바깥으로 나오진 않았다. 잘 숨겨서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그를 다시 저 과거에 가뒀다. 불쑥불쑥 탈출하려던 그를 가리기 급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 참 신기한 일이다. 그를 생각하니 다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저 무게 없는 그 말에 나는 어디까지 쫓은 걸까. 멈추지 않는 온갖 이야기에 스스로가 어이없어 작은 웃음이 새어 나올 때쯤에야 멈출 수 있었다. 역시 그 어떤 자극도 그를 이기진 못하겠다는 확신과 함께 나는 지금 새로운 이야기를 뱉고 있다. 덕분이라고 해야겠다.


사랑을 담뿍 주었고, 사랑을 담뿍 받았던 20대의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그로 완전한 답이 된 것 같아 감사하면서도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든다. 꼭 그가 아니어도 참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던 나였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그가 아닌 이야기를 담지 않게 된 걸까.


내가 담은 수많은 이야기 중에 그가 속하지 않은 이야기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적다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앞으로도 언제까지 그로 노래를 할지 모르겠다. 억지로 참으려 하니 오히려 더 깊어진 마음에 적잖은 당황이 일고, 그 당황을 곁에 둔 채로 또 이렇게 그로 가득한 밤을 보내겠지.


언젠간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가도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기도 하다. 솔직함으로 가득한 이 일기가 내일의 나에겐 우스꽝스러운 추억이길 바라면서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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