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거 있잖아, 당신이 곁에만 있어도 안정이 되는 거. 내가 오래 살았다고 하긴 조금 우습지만 말이야. 살다 보니 꽤 나는 버라이어티 하게 살아온 것 같거든. 밋밋하게 누구보다도 튀지 않게 조용히 살길 바랐는데, 유난히도 많은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살게 됐어. 그런 나라서 언제나 휘청거리게도 된 것 같아. 많은 일을 겪어서 단단해진 게 아니라 너덜너덜한 거야.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이쯤 되면 덤덤할 일조차도 덤덤하지 못하고 더 유약해지기만 한 채로 조금 더 나이만 먹는 거지. 근데 이상하게도 아니 사실 어쩌면 우리 아직 서로를 잘 모르거든, 그래서 내가 온전히 당신을 의지하기엔 너무도 어려운 게 맞거든. 여태까지 어떤 사람을 곁에 둘 때에 이렇게 금세 내 온 마음을 의지하게 된 일이 없거든. 근데 당신은 그런 거야.
왜 그런 말 있잖아. 언젠가 내 오랜 인연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이 빛나 보인다고. 낯설지가 않고 꽤 오래된 사이 같을 때가 있다고. 왠지 모를 확신이 든다고.
처음에는 날이 잔뜩 선 채로 당신을 봤고,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어. 그리고 금방 나는 나를 드러냈고, 그럼에도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상처에 예민하게 굴고 혹시나 달아날 사람이라면 가버리란 듯 굴었어. 당신은 달아나긴커녕 조금 더 내게 가까이 왔지. 내 기준에서 당신은 조금 이상했어. 그렇게 뾰족해져도 달아날 생각을 않는 게. 어쩌면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모르는데, 왜 이렇게 깊은 안정이 오는지. 당신도 같은 마음이긴 한 건지. 나는 잘 모르겠고, 늘 얘기해 줘도 여전히 달아날 행복일까 두렵고, 어려우면서도 그저 곁에 당신이 좋은 거지.
이게 뭔지 잘 몰라, 확신을 가진다는 게 생각보다도 어려운 일인 데다, 그다음에 올 어떤 페이지든 문장이든 두려운 건 사실이니까. 겁쟁이라서 여전히 겁이 나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당신이 곁에 있다는 믿음 하나로 내 삶에 자꾸 안정이 찾아온다는 거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냥, 그 말이 하고 싶은 밤이야.
잘 자 -
나의 안온, 나의 품, 나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