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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Jul 02. 2023

시간을 내서 만나는 사람, 시간이 나서 만나는 사람

시간을 내서 만나는 사람, 시간이 나서 만나는 사람. 관계에 대한정의를 할 때에 시간을 어떻게든 내는 사람과 시간이 나야만 만나는 사람이 있다. 시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 나는 종종 나이를 이야기하는데, 안타깝게도 나이를 먹으면서 그것에 대한 분류가 확실해지는 것 같다. 어렸을 때에는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기준 없이 누구든 내 시간을 모두 내어 만났던 것 같다. 시간이 나서 만나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아주 잠깐이어도 그렇게 사람을 만났던 것 같다. 그게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이던 모두에게 같았다. 어쨌든 모두 나의 지인이니까. 결국 나와 모두 알고 지내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부터 나의 시간이 필요해졌다. 나만의 시간. 오롯이 나 혼자 생각하고 나 혼자 쉴 시간. 오랜 연애를 하는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나는 나의 시간이 종종 필요했다. 그 사람과의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즐거워질 만큼의 시간을 뒀다. 처음엔 내가 만든 나의 시간이 상대에게도 휴식이 되어 반가워했다. 그랬던 사람이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해했다. 내가 가지는 나만의 시간이 늘어갈수록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은 줄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사람과의 시간을 피하게 됐다.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처음엔 그러지 않았다. 그 사람과 10분을 보더라도 그 사람을 보는 게 좋았다. 잠깐의 눈 맞춤과 짧은 포옹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그 사람과의 시간을 조금씩 더 욕심냈었다. 지금의 내 나이었던 그때의 그 사람은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겠지. 내내 우리의 시간을 보내기를 소망했던 나와는 달리 그 사람은 자기만의 시간을 필요로 했고, 나는 그런 시간이 늘어갈수록 외롭고 서운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늘려가는 것을 보고, 나도 나만의 시간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나 혼자 오롯이 보내는 시간이 편해졌고, 익숙해지면서 점점 '우리'로의 시간을 줄여갔다. 내가 시간을 줄이면 줄여갈수록 그 사람은 다시 우리의 시간을 늘려나가길 바랐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였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진 마음을 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온 듯했다. 초조해했다. 처음에 내내 초조했던 나는 오히려 평온해졌고, 평온하기만 할 줄 알았던 그 사람은 불안해했다. 줄어든 시간만큼 나의 태도도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겠지. 그 사람과의 대화도, 눈 맞춤도, 짧은 허그도, 입맞춤도. 어느 하나 기대하지 않았고, 원하지 않았다. 애정표현이 사랑하는 마음과 비례한다고 하던 나는 어디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내가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돌이킬 수 없으리라는 것을. 상대방의 마음과 상대방의 생각은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어차피 시작은 언제든 내가 아니었을 테니. 누구를 만나던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마음이 멀어졌다. 방치됐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서서히. 편해지고 평온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상대방과는 달리 관심도 마음도 사라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을 알고 있다. 어릴 때에는 그런 말 따위 믿지 않았다. 마음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생각했기에. 하지만 지금은 완벽히 알고 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 들수록 마음도 함께 줄어들겠지. 나의 경우는 그런 것 같다. 내 시간이 늘면서 처음엔 상대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 시간이 어느 정도를 겪고 나면, 다시 줄어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온전히 나의 시간을 갖기 시작한다. 그 마음이 줄어들고 내 시간의 즐거움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나에게 상대방은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인식된다. 대게는 그랬다. 아니 모든 관계가 그랬던 것 같다. 그게 연인이던, 직장동료던, 친구던. 어떤 경우여도 그랬다. 그리고 나는 다시 누군가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잡고 있는 손이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방치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배려. 시작은 배려였겠지만, 시작은 시작의 자리에만 남아있을 뿐. 눈 마주치는 시간이 줄어들면 들수록 마음도 함께 줄어들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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