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카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잔 곁에 두고 테이블을 바짝 당겨 앉았다. 곧바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선, 나긋한 음악을 틀어 주변의 소리를 차단했다. 그리곤 한동안 미뤄두었던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책을 읽으려 하면 한 두 문장을 끝으로 집중이 되지 않아 덮기를 여러 번, 이번엔 단숨에 책의 3분의 1 가량을 읽었나갔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이 사람의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기 같아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보며 직전에 읽은 내용을 곱씹었다.
마음에 남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내 마음을 다 들켜버린 것처럼, 나를 알아주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금 생각해 본다.
글이라는 게 쓰는 이의 녹진한 삶들이 찐득하게 담기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렇게 나를 완전히 들키는 것 같은 게 어쩌면 좋은 책이라고 하는 것이, 읽히는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공감. 그래 그게 어쩌면 가장 완벽한 어떤 것이겠지. 술술 읽힌다는 것. 그것 역시 그런 연유겠지 싶은 거다.
내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고 지나온 책들은 한번 지나고 나면 다시 꺼내어 읽지는 않더라. 그런데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다 느꼈던 이야기는 생각이 날 때마다 다시 꺼내어 읽곤 한다. 부분뿐이던, 책 전체던. 그건 중요치 않다. 내 마음을 건드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 나는 왜 몰랐을까. 나 조차도 해왔던 이 습관적이었던 일을. 내가 누군가의 책을,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아 왔던 이유를 말이다. 나는 이제야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게 된 것 같다. 몰랐다는 게 이상한 일이겠지만.
이전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낸 적이 있다. 내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낸 적이. 이전에 책을 낼 때에는 지금은 그 책을 더 이상 판매하지 않기로 하고 닫아두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내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에만 치중했던 것 같다. 그냥 세상 밖으로 내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라도 한 사람이라도 내 이야기를 공감하고,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나는 살아내고 있으니, 당신도 충분히 살만하다 느끼고, 이해하고, 위로받을 수 있겠지라는 자만이었던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쓴 나의 이야기는 공감은 커녕 위로가 절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어쩌면 까만 종이에 까만 볼펜으로 쓴 보이지도, 읽힐 수도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 나는 이런 사람이다. 그냥 그걸로 끝인 그런, 지나가기만 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흔하디 흔한, 고속도로 위 빠르게 지나는 차들 사이로 아무런 효과 없이 덩그러니 이름만 박힌 광고판 같은 것. 그리곤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오히려 내 이야기가 읽히면 내가 위로를 받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작가님의 글은 달랐다. 나를 들킨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덤덤히 다독여준다는, 오늘 하루 고생했다고 위로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멈추어 생각에 잠기더라도 완전히 중단해 덮기는 어려울 만큼의. 마음에 어떤 것을 가득 채워주는 것.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글이란 건 역시 참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나는 다시 읽힐 수 있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주고, 작은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꿈틀 거린다. 처음 글을 쓸 때와는 전혀 다른 마음이다. 여태까지 나를 살게 한단 생각으로 뱉기만 했던 글과는 다른, 나는 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따뜻할 수 있을까. 오늘의 고민이 내일의 나를 움직일 수 있을까.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나는 다시 책을 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