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는 연습일까

우리는 사랑을 더 돈독히 하기 위해서 싸우는 걸까. 헤어지는 연습을 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헤어질 정당한 이유가 필요해서 싸우는 걸까. 다툼의 시작은 분명 아주 작은 부분에서다.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갖가지 핑계의 서운함. 나를 조금 더 생각해 주고 나를 조금 더 아껴줬으면 하는 부분에서 비롯된 정말 작은 어떤 조각. 그 조각은 점점 커지고, 다툼은 잦아진다. 우리는 알고 있다. 각자의 삶에서 보낸 시간이 우리가 되어가려면 얼마나 더 많은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채로 관계를 시작한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기에. 관계를 맺고 끊음에 있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그런 관계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시점부터는 관계를 맺는 것 그 자체로 생기는 피로도에 굳이 애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며 더 확고해졌다. 그러니 어렵게 시작한 만큼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겠지. 생각보다도 더 많이 신경 쓰게 되겠지. 나의 루틴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상대방과의 관계도 적당히 유지하길 바라는, 조금 어릴 때와는 다른 사고를 하게 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맞춰가기로 다짐을 수 번 했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건 조금 멀리 돌아온 각자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겠지. 안다. 알아도 잘 되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기대가 커져서겠지. 처음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 사람과의 관계에 이만큼의 기대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에 확신이 들고, 갑자기 늘어나는 기대로 홀로 상처도 많이 받았다. 확실히 많이 달라졌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짐에 있어서 내 마음에 대한 확신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기대로 관계를 맺었다면, 지금은 그 반대니까. 달랐다. 안정감을 더 크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게 그 안정감이 채워지지 않는 순간들을 마주하면 오히려 기대만 가지고 실망을 했을 때보다 더 많이 뒤틀렸다. 나는  마음이 자주 넘어졌다. 이 사람에게 느낀 안정감이 불안으로 바뀌면 마음은 삽시간에 뒤집혔고, 짧은 불안에도 크게 흔들렸다. 다툼은 잦아졌고, 다툼의 본질을 자주 잊었다. 더 돈독해지려고 했던 다툼이 이제는 헤어지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러던 순간 어느 영상에서 나온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다툼은, 그 사람이 소중해서 하는 거라고. 인간은 다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다투는 사람들이 다투지 않는 경우보다 더 오래 돈독히 지낸다고. 다툼이 있다는 건 서로를 동등하게 바라보기 때문이고, 맞지 않는 부분을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것. 다툼이 없는 경우는 대부분이 한쪽이 기울어진 관계라는 것.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한쪽이 다 맞춰야 하기 때문에, 점점 더 관계는 기울어지고 결국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지쳐 나가떨어진다는 것. 어쩌면 다툼이란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하지만, 서로를 더 돈독히 하기도 하고 , 더 많은 생채기를 내기도 하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투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거라는 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알고리즘에 의해 계속 나에게 노출이 되었고, 나는 다시, 또다시 생각을 주워 담아 자리에 앉았다. 서운한 마음을 잔뜩 쥔 채로, 다툼을 반복하고도 그 사람이 보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게 무슨 마음인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졌다. 그리고 다시 나는 맨 앞의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우리의 다툼은 더 돈독히 하기 위함이 맞을까. 아니면, 헤어지기 위한 연습 혹은 준비인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전자가 그 사람에게도 같을까. 머리를 쥐어짜고 하루종일 읽히지도 않는 책을 읽을까 고민하고, 오랜만에 시리즈 물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물음에 속이 답답해졌다. 노곤한 몸과 시끄러운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기에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와 노트북을 켜고 앉았다. 영 시끄러운 마음에 그래도 변함없는 결론은 "나는 아직 그를 사랑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