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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May 19. 2023

사람 진통제

가끔, 정말 가끔 갑자기 뜬금없이 아플 때가 있다. 오래 아픈 것은 아니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 그런 이상한 아픔. 음식을 잘못 섭취해서도 아니고, 건강상의 또 다른 문제가 있어서도 아닌. 검사를 해도 나오지 않고 진료를 받아도 딱히 의사의 다른 소견이 없는 그런 일.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갑자기 극심한  스트레스나 신경성으로 일시적으로 생기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퍽 난감하다. 보통은 그래도 쉬는 날 아프거나 해서 근무에는 지장이 없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정말 어쩌다 근무 중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렇게 난감하고 죄송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쳐가면서 아픈 것은 홀로 아플 때보다 훨씬 더 아프고 불편하다. 서글픈 생각이 나를 집어삼킨다. 애써 참아도 되지 않아 양해를 구하고 그대로 퇴근을 하긴 했지만 마음 구석이 불편해 딱히 편히 쉴 수도 없는 그런 날.


택시를 타고 막히는 숨에 울렁이는 속에 집으로 겨우 돌아오던 중, 이대로 집으로 갔다간 다음날 근무에도 지장이 생길 것만 같은 공포에 병원을 들렀다.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고 누워 잠깐 쉬다가 집으로 돌아와 또 잠깐 잠이 들었다가. 하루가 그대로 날아가버렸다. 병원을 가는 동안,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동안, 너무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쏟아지고 눈앞이 내내 흐린 동안에도 틈 없이 생각나던 사람. 바쁘고 힘들고 정신없을 걸 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내내 투정을 부렸고, 다 받아주던 사람. 아파서 서럽다는 나의 말에 그 사람은 단숨에 내게 오겠다는 말을 전했고, 주사를 맞고 지구가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꾹꾹 삼키고 겨우 집으로 돌아가 한참을 서러워 울다 잠이 들었다.


잠이 얼마나 언제부터 들었는지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남자친구가 온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잠이 들어버렸고, 남자친구가 도착한 지도 모르고 자다 벨소리를 듣고 놀라 잠이 깼다. 피곤하고 힘들 텐데 전날에도 내가 요즘 잘 못 자니 산책을 같이 하고 조금이라도 더 편히 자게 해 주려 애쓰다 간 사람.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아프단 얘기에 놀라, 퇴근하자마자 나를 다독이러 온 사람. 참 이상하지. 하루종일 아파서 물 한잔에도 속을 다 비워내야만 했고, 가만히 서서도 배를 타는 것 같던 내가. 아무리 수액을 맞고 자고 일어났다고 그 잠깐의 몇 시간으로 괜찮을 리 없는데. 남자친구가 따뜻하게 안아줬다고 서러워 난동 피우던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게. 정말 언제 그랬냐는 듯 울렁이던 속이 얌전해진다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한 줄은 알았지만, 몸도 간사한 줄은 몰랐는데, 참 놀랍게도 간사해서 불편한 마음이 가시고 어떤 이유로든 안온이 찾아오면서  내내 아팠던 것도 잠시 가시는 것 같았다. 남자친구는 보고 싶어서 괜히 꾀병 부린 것 아니냐 느낄 만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진통제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아무래도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 같은 날이었다. 물론 진통제 효과도 곁에 있어야만 가능한 것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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