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udie Nov 25. 2020

내가 죽던 날


잠을 잘 수없었다 

잠을 자면 자꾸 내가 죽는 모습을 봤다 

그것 때문에 수면제를 먹으면 일어나면 여기가 어디지 하고 일어난다 

그걸 보면서 내가 죽는 데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매번 저거 좀 치워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내가 죽던 날'에서 김혜수가 했던 이야기 중 일부분이다. 

(명확한 대사가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이 기억나서 그중 생각나는 부분들을 적은 것이다.)




[ 내가 죽던 날 ]이라는 영화를 봤다. 제목이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처음엔 엄마랑 같이 보려고 했는데, 엄마는 제목이 너무 어둡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친구랑 같이 보러 갔다. 제목은 상당히 어두웠고, 내용도 그다지 밝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영화가 알려주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많았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은근하게 보여준 대한민국 안에서 여자가 직장생활을 하는데 생기는 문제들로 인한 불편들. 강한 편견들이 있었다.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했다. 어둡고 조용했다. 큰 사건을 중점으로 움직이는 영화치고 자극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지루할 수도 없었다.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반전을 기다렸고, 반전은 있었다. 하지만 과연 감독이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어떤 것이 었을까.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위의 장면이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피의자의 딸과, 그 사건의 마무리를 맡은 김혜수. 두 사람이 같은 모습이었다. 갑자기 날벼락을 맞았고,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했고, 늘 쉽게 잠들지 못한다. 겨우 잠이 들어도 악몽에 시달렸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쉽지 않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써도 결국에 남는 건 혼자다. 그 사람이 그럴 리 없어하고 믿어주는 사람조차도 없이. 


근데 생각을 해보면 나도 별반 다를 것 없는 것 같다. 케이크 회사를 다닐 때  나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나는 회사에서 꽤 오랜 시간 일을 해온 직원이었고, 건강상의 문제로 반죽을 하는 일을 배우지 못해 진급은 할 수 없었고 만년 사원으로 일해야 했다. 오랜 기간 일을 하면서 직급자들의 자리를 메울 정도가 되었고, 신입들의 교육을 도맡아 해왔다. 그러다 한참 바쁜 시기에 들어온 신입이 있었다. 그 신입은 항상 혼자였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혼자인 게 영 불편했다. 그래서 같이 밥을 먹자고 하기도 하고 괜히 더 챙겼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그 사람이 갑자기 일을 못하겠다고 하고 퇴사를 했다. 그러면서 직급자들에게 내가 힘들게 해서 그만뒀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좀 더 챙기려고 했고, 더 잘해주려고 애썼지 괴롭힌 적이 없는데. 오해는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직급자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근데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래 일할 사람이 아니었고, 핑계가 필요했으리라 넘기려 했다. 근데 직급자들은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다른 직원을 불러 다그치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 함께 일을 해왔던 우리의 말은 듣지도 않고 그 사람의 말만으로 쏘아붙였다. 그리고 소문은 빠르게 나기 시작했다.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나와 그 친구는 오해가 풀리기 전까지 소문이 잦아들기 전까지 매일을 눈물로 일을 했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을 하루에 12시간을 넘게 본, 그렇게 몇 년을 함께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고, 오해가 풀리기 전까지 마녀사냥은 계속되었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악착같이 일을 했는데, 남은 게 없었다. 자고 일어나 회사에 가는 일이 끔찍했다. 회사에 가서도 아무도 없었다. 김혜수가 직장에서 겪었던 일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다행히 오해가 풀린 건지 그 일은 점점 잊혔지만, 나는 여전히 그 일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견디기 힘들었다.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는 게 ,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게.


누구나 같은 일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진 않을까. 어떤 것에서 오는 그 허무함과 나를 믿어주는 이가 없다는 그 허망함이 주는 무기력.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결국은 혼자라는 것. 하지만, 영화에서도 그랬듯 인생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다. 그래서 오늘도 그것들을 이겨내려고 아등바등하는 거겠지.

작가의 이전글 숨, 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