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이 되는 말과 장면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장면일까.

by maudie
말이라는 건 어떤 사람에게로 가 유언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사람이 죽고자 할 때 마지막에 하는 말이 유언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유언은 임종 직전 그 사람이 마지막에 직접 하는 말일 수도 있고, 그 이전에 글로 써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유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뱉은 마지막 말도 역시 유언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 박준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시인의 산문집 중 위의 글을 읽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의 말이 죽지않고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는 말. 시인의 말처럼 유언이 된 말은 대게 오랜 기간 동안 사람의 마음속에서 살아남는다. 그 사람을 기억하는 마지막 말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나를 기억할 유언으로 남는 말이 어떤 게 있을까. 그 말은 그 사람을 아프게 하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언젠간 나를 떠올렸을 때 그 말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말이었을까? 대부분 관계의 마지막 언어, 유언이 될 그 말을 따뜻하게 한 경우는 없는 것 같다. 말을 예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는 편인 데다 너무 날카롭게 솔직한 편이라. 내가 뱉은 유언들이 그 사람의 마음에서 가장 잔인한 문장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들의 유언을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마지막 엔딩을 잊지 못한다. 장면을 통째로 기억하는 나는 아마도 유언만을 기억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괴로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을 통째로 기억한다고 해도, 장면이라는 게 상당히 주관적인 거라 왜곡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해석을 하게 하는 것도 어쩌면 그 사람의 마지막 유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저마다의 해석으로 살아가니까.


장면을 통째로 기억한다는 게 어떤 것이냐면, 그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와 그 사람의 마지막 표정, 심지어 그날의 온도까지도 기억한다. 가끔 나는 내가 무서운 게 뭐냐면, 어떤 장면들이 마치 눈앞에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장면이 재생될 땐, 꿈을 꾸는 것보다 훨씬 지치는 것 같다. 누군가를 떠올리면 그 사람에게서 가장 강렬했던 장면들이 부분 부분 재생된다. 꽤 긴 장면이어도 그렇다.


그 시간에 멈춰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게 참 무서운 일이다. 내가 잊지 못하는 장면이 늘 좋은 기억만은 아닐 것이기에. 누구를 떠올리면 그 사람에 대한 장면이 재생되곤 하는데, 그 장면이 항상 좋지만은 않다. 제발 좀 잊어줬으면 하는 장면들이 무한 반복 구간에 걸려버리면, 그날은 방전이 된다. 생각이 멈춘다. 그 장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내게 상처였기 때문일까. 과연 그것뿐일까.


이 이야기들을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려봤다.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을. 안타깝게도 좋은 장면보다는 좋지 않은 장면들이 먼저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게 그 사람에 대한 기억중 가장 강렬한 기억이 아닐까. 그렇다면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유언을 남겼을까, 어떤 장면으로 기억될까. 뻔뻔하게 들리겠지만, 누군가에게 그저 상처로만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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