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말하느냐 < 어떻게 보이느냐
보이스&톤, 그거 그냥 빛 좋은 개살구 아닌가요?
UX라이팅에서 보이스&톤에 대한 내 생각을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유명무실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그럴싸하게 표현할 순 있지만, 현실에선 막상 써먹지 않는 도구에 불과하달까. 어찌어찌 보이스&톤을 정하더라도 실무에서 과연 얼마나 보이스&톤을 의식하고, 적용하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글쎄?"라는 회의적인 반응만 나올 뿐이었다. 솔직히 패션/금융/F&B/자동차 앱에 쓰인 UX라이팅을 같은 산업군별로 모아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면 텍스트만 보고도 특정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을까? I don't think so.
텍스트만으로는 브랜드 간 변별력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텍스트만 보고도 브랜드를 떠오르게 할 수 있으려면 보이스&톤은 결국 브랜딩 그리고 콘텐츠와의 접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이스&톤+브랜딩+콘텐츠 3가지를 함께 버무린 UX라이팅은 비로소 고유의 색을 띠게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나는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어느덧 적응이란 걸 하고 보니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깊이 생각할 여유가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보이스&톤이었다. 사실 보이스&톤 이야기만 나오면, 속으로 그랬다. 또, 또, 또 뻔한 이야기들 하고 앉아 있네....라고. 그런데 '내 브랜드'의 사용성을 높이기 위해서 보이스&톤을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UX라이팅에 적용하다 보니 조금씩 생각이 바뀌어 갔다. '어랏? 꽤 필요한 개념인데?'하고. 여기서 중요한 건, 태도의 변화가 생각의 변화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UX라이터로서 나의 태도가 달라졌다. ①내 브랜드라는 인식. ②여기에 어떻게 보이스&톤을 녹여 넣을 것인가 라는 의식 그리고 이를 라이팅에 ③적용하는 것. 이 3박자가 실제하는 보이스&톤을 만들어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UX기획자&콘텐츠 에디터들과 함께 소규모 단위의 과업을 진행하면서다. 과업의 시작과 진행과 마무리를 위해 중간중간 소소한 미팅을 진행하면서 '나 자신'의 보이스&톤을 먼저 톺아봤다. 나는 최선을 다해 해답을 나누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상대를 설득하지 못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부끄럽지만, 3박자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고, 해답을 꺼내 보이는 태도 또한 매끄럽지 못했다. 그런 나 자신을 돌아보며 깨달은 것 하나는 내 속에 진짜 다이아몬드가 들어있다 해도, 어떤 모양으로 나타내느냐에 따라 다이아몬드의 값어치가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태도를 바꾸었다. 마음을 정비했고, 다이아몬드를 담는 그릇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태도가 달라지자 그에 걸맞은, 나만의 보이스&톤이 수면 위로 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하면
그에 걸맞은 목소리와 톤은 자연스레 나오기 마련이다
UX라이팅에서의 보이스&톤도 '어떻게 말하느냐' 이전에 '어떻게 보이느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하면 그에 걸맞은 목소리와 톤은 자연스레 나오기 마련이다.
<전략적 UX라이팅>이란 책에서 작가는 좋은 UX라이팅이란 사용자가 텍스트의 존재조차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인상적인 글귀'로 누군가의 기억에 남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설령 그게 UX라이팅이라 할지라도- 당연한 감정이 아닐까? 말하고 싶은 건, 어떤 태도로 어떤 생각의 깊이로 텍스트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좋은 UX라이팅도 탄생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UX라이터도 회자되는 라이팅을 쓸 수 있다! 인상적인 글귀로 사랑받는 보이스&톤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인상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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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앤톤과 관련해 시즌1에서 내 생각은 이랬다. 에세이 형식을 빌려 가볍게 쓴 글이고, 당시엔 딱 거기까지였다. 생각은 성장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30. [UXW 에세이] 텍스트에 목소리를 입히면
Epilogue
참 재밌다. 개인적으로 UX라이팅 시즌1에서 시즌2로 넘어오며 달라진 '나 자신'의 변화를 감지하는 일이 참 재밌다. 나름 겁 없이 뛰어든 이 세계에 두 발을 짚고 서서 시즌1을 시작할 때를 다시 떠올려 봤다. 돌아보니 알겠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비로소 시작할 때'라는 진리를. 요새 새로운 꿍꿍이를 하나 끌어안고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늦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비로소 '시작할 때'라는 걸 알고 있다.
새로운 꿍꿍이를 위해 흥미로운 강연 하나를 찾아 들었다. 각각의 연사 모두 '태도'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빈폴의 새로운 광고 카피를 보며 무릎을 세게 쳤다. 깨달음은 늘 아무렇지 않게 툭 하고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