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넣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빼느냐이다. 여백의 활용에 관한 이 말은 그래픽 디자인에도 적용된다. 19세기 잡지와 신문의 조판공들은 가능한 모든 공간을 활자나 이미지로 가득 채웠다. 출판인들은 여백이란 개념을 아주 싫어했다. 그들은 단 1 파이카의 공간도 낭비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광고와 기사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자 비로소 프레임 역할을 위해 여백을 추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부터 여백을 유용한 요소로 여기는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었다.
< 아이디어가 고갈된 디자이너를 위한 책>
억지로 채울 수 없고
억지로 비울 수 없다
무엇을 채우는 일도
무언가 비우는 일도
적정선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채울 수도 비울 수도 있다
*적정선: 알맞고 바른 정도를 나타내는 범위가 되는 선
그러면 적정선인지 어떻게 알까
가득 채워봐야 한다
홀딱 비워봐야 한다
가득 채워보니
무엇이 넘쳤는지 알게 돼서 덜어낼 수 있고
홀딱 비워보니
무엇이 부족한지 보여서 채워 넣을 수 있다
그런 과정 없이는
채울 수 있는 것도 비울 수 있는 것도 없다
하지만 대부분 무작정 채우거나 무작정 비운다
무모한 채움은 과유불급
무모한 비움은 시기상조다
여백의 정수는
더할 나위 없는 간결성이다
간결성이 최고조에 다다르려면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
간결성의 힘은 거기에서부터 나온다
무성한 풀숲에서
간결성은 힘이 없다
잡초가 제거되고
딱 필요한 만큼의 적정선에서 멈출 줄 알면
간결성이란 힘이 생긴다
간결성이 성립될 때까지 서사도 필요하다
어떤 과정이 있어 간결하게 되었으니까
좀 더 간결하게 해 주세요 하는
단순 요구는
철 없이 핀 꽃처럼
시기상조다
그럼 어디 한번 네가 해봐라
네가 뽑은 게 잡초인지 꽃인지
뽑아보면 알겠지
네가 만든 게 공백인지 여백인지
비워보면 알겠지
세상에 흥 하고 싶을 때
우는 마음으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