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언어 세계관 구축
라이팅 체계를 브랜딩 자산으로 만들기
한 해를 마무리하며 또 하나의 라이팅 가이드를 종결짓는 순간, 앞으로 가이드를 어떤 방향으로 제작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됐다. AI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이 환경에서, 기존의 방식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기업의 라이팅 가이드를 만들어 봤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유난히 더 많은 고민과 공수가 필요했다. 이유인즉, UX라이팅에 훈수를 둘 줄 아는 사람이 많아져서 사실상 '표준화/평준화'되고 있는 가이드에 '차별화 전략'을 꾀하지 않고는 '다름'을 증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팀은 '기업의 무형자산화' 전략 관점에서 일부 새로운 맛을 가미한 라이팅 가이드를 만들었다. 물론, 기업은 여전히 기존 방식의 익숙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동시에 AI 시대에 요구되는 경쟁력, 즉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의지 또한 분명했다. 이 두 방향성 사이에서 모든 게 도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기존 가이드의 틀을 존중하되 라이팅 체계가 기업의 브랜딩 자산이 되도록 그 취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AI 시대에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라이팅 가이드 전략은?
브랜드가 가진 고유한 언어 시스템 자체가 곧, 경쟁력
이제 UX라이팅 가이드의 스탠스는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 기업의 라이팅 가이드는 컨피덴셜 문서로 분류되며 내부 운영 기준으로만 활용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브랜드만의 고유한 언어 체계를 정의하고 유지하는 무형자산으로 재정의 되어야 한다.
기업이 고유 서체를 개발해 시각적 정체성을 구축하듯, 기업 고유의 문체를 설계해 언어적 정체성을 갖추는 일은 UX라이팅 전략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명확한 기회다. 이를 위해서 기존의 고수하던 것들 - 이를 테면 라이팅 기본원칙 -은 전략 그 자체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기본 원칙은 개념적인 토대에서 머물러야 하며, 브랜드 고유 언어를 구축하는 '더 큰 그림'을 가리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더 큰 그림은 무엇일까? 브랜드 언어 체계는 크게 4가지 축으로 구성할 수 있다.
일, 세계관의 창조
브랜드의ㅡ 가치, 태도, 목적을 중심으로 서사적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모든 문구의 말투, 템포, 감정선을 그려나가야 한다.
이, 고유의 어휘/표현 개발
브랜드 문구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단어, 메타포 등의 표현방식이다.
'어? 이 말맛은 이 브랜드인데?'라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언어적 지문 같은 거랄까.
삼, 문장 패턴(스타일) 고안
문장 구조의 개성이다. 어떤 문장 구조를 기본 패턴으로 삼는지가 곧 부랜드의 목소리를 구성한다.
사, 휴머니즘 정서/감정선
AI가 따라 하기 어려운 영역이니까, 꼭 필요하다. 상황의 맥락을 읽고, 사용자의 정서를 이해하며, 브랜드 특유의 따뜻함, 배려, 위로, 유머, 여백을 녹여내는 능력은 브랜드에 휴머니즘을 부여한다.
플로우 곳곳에 감정선을 심는 전략까지, UX라이팅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돌고래 유괴단이 보여준 세계관 기반 언어 전략
돌고래 유괴단의 광고가 업계에 남긴 가장 큰 인상은 단순히 톤이 독특해서가 아니다. 그 핵심에는 세계관 창조 전략이 있다.
- 그들만의 서사
- 그들만의 문체
- 그들만의 유머 구조
- 그들만의 말투
이 요소들이 결합되었기 때문에 일반 광고 언어와 완전히 다른 고유한 언어가 만들어졌다. 즉, 광고의 말투자체가 브랜딩이 된 사례다.
UX라이팅도 이 방향과 맞닿아 있다. 라이팅 가이드에서 기업명을 지웠을 때, 어느 브랜드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가이드라면 그것은 ‘규칙 모음’에 불과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업명을 삭제해도 문장의 결, 세계관, 표현 방식만으로 그 브랜드가 식별되는 — 즉, 독보적이고 고유한 색을 가진 라이팅 가이드다.
그래야 UX라이팅 가이드가 단순 문서가 아니라, 브랜드 경험을 구성하는 무형 자산으로 자리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UX라이팅이라는 분야 자체도 AI 자동화 시대 속에서 대체 불가능한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확보하게 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