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밭농부 Oct 09. 2016

자신 있습니까?

#183.

"자신 있습니까?"

무언가 준비된 상태를 확인하거나

다져진 각오 등을 점검하고 싶을 때

우린 이렇게 묻는다.

왜 이런 말들이 생겨났을까?

그건 우린 항상 함께 있어야 할

"나"를 쉽게 그리고 자주 잊고 살거나

"나"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자신"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 없이 살아갈 수도 없다.

우리의 눈과 마음은 외부로 향하기 쉽다.

하여 내 속의 "자신"을 잊기 쉽다.

세상 모두를 담고 있는 "자신"의 진가를 잊고

"남"과 비교하며 "자신감"을 잃기도 쉽다.

"자신"과 "자신감"은 배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가 "자신"이요 "자신감"이다.

그 "자신"에 세상 모든 일을 능히 행하고

어떤 고난도 감당할 능력이 있음을 깨닫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이요.

그것이 깨닫는 것이요.

그것이 성자가 되는 첫걸음이다.

안타깝게도 이 깨달음은

소위 어른이라는 나이만 먹은 사람보다는

천사 마음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발견된다.

오늘 아침 그대에게 물어보라.

"자신 있습니까?"

그리고 잊지 마시라.

You are who you are! 임을.


의식 수준이 향상되면서부터

우리는 자신감이나 자존감을 강조하게 되고

타인이 나의 자존감이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지 않고 존중해 주기를 원하죠.


역설적이게도 의식 수준이 향상되면서부터

우리는 "자신"은 물론 "자신감" 조차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는 주문처럼, 덕담처럼

"자신 있지?"

"자신감을 가져!"라고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일깨워 주며 살죠.


또한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자신 있어요?"라고 묻는 건.

어설프게 머리로 익힌 지식으로 처리하지 않고

내면 깊이 있는 "자신"을 믿고

완벽하게 처리했는지 묻는 말이죠.

그리고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겠냐? 는

물음도 포함하고 있지요.


이처럼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 "자신" 안에 무한한 능력이 있음도 알고 있지요.

다만 그 "자신"을 스스로 너무 쉽게 잊고 살기 쉽기에

서로서로 묻는 거죠 "자신 있어요?"라고...


삶은 언제든 힘들어질 수 있고

행복에 겨울 수도 있다.

삶의 본질은 그런 외부환경의 변화에 있지 않아요.

그런 변화에도 마음 한가운데에서 항상 변하지 않고

선명히 존재하는 "나"를 자각하고 잃지 않는 데에 있어요.


그 "나"를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을

"깨달음"이라 하고 그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성자라 부르거나 혹은 신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신은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신에게 올 수 있는 지도를 마음속에

"나"라는 암호명으로 숨겨 놓았죠.

그런 "나"를 찾고 깨닫기는

숨쉬기 보다 쉽기도 하고

숨 끊기보다 괴롭기도 하답니다.

"나" 찾기를 방해하는 또 다른 "내"가 있거든요.


그래서 우린 어느 때부터인가 서로 물으며 살죠.

"자신 있습니까?"라고.

오늘도 여러분께 그리고 저에게 묻습니다.


"자신 있습니까?"


마음밭농부

매거진의 이전글 형용사를 잊어버린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