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마음이야기 #219.
이별은 아프다.
그러나 그 슬픈 길 통해서만
새로운 만남에 닿을 수 있다.
만남은 이별 속에 숨어 숨 쉬는 새 생명.
하여 이별은
아프지만 외롭지 않고
끝인 듯 시작되는 창조적 고통이다.
사람에겐 꼭 해내어야 하는 이별이 있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
나라고 생각했던 것.
그 모든 생각들 놓아 버려야만
생명 같은 새로운 삶 누릴 수 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색은
사물의 본래 색이 아니다.
빛의 산란(散亂)이 부리는 왜곡된 색일 뿐이다.
사람의 오감으로 만나는 세상은
원래의 세상이 아니다.
생각의 산란(散亂)이 부리는 왜곡된 삶일 뿐이다.
빛의 근원을 보고
삶의 근원을 만나려면
눈과 생각을 버려야만 보고 만날 수 있다.
사람이 새로 태어나려
꼭 해내어야 하는 이별은 이와 같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걱정, 궁리, 상상 같은 생각을 하든
희로애락 같은 감정을 느끼든
깨어 있는 한 우리의 마음은 쉴 틈 없이 바쁘죠.
하지만 그 생각과 그 감정이라는 것이
여러분의 적절한 통제하에서 처리될까요?
다른 말로 하자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의 주인이신가요?
생각은 수시로 모습을 바꾸기 마련이죠.
생산적인 궁리를 하다가도
자연스레 걱정과 고민으로 빠져들기 쉽죠.
왜냐하면 우리가 평생을 통해
걱정과 고민으로 빠지는 길을 넓혀 놓았거든요.
하여 생각은 크고 넓고 자주 가던 길로 가게 마련이죠.
감정은 또 어떤가요?
화나면 화를 내고, 짜증이 나면 짜증을 내고
그나마 대단하다고 인정받는 수준이
그 감정을 꾹 누르고 참는 수준이죠.
불쑥불쑥 오르는 감정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그 감정의 마성에서 벗어날 수 없죠.
예를 들어 화가 났을 때는
내 마음속에 "화"라는 감정이 찾아온 것일 뿐
내가 혹은 내 마음이 "화" 자체가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죠.
그런데도 우리는 손님인 "화"에게 주인 자리를 내어 주고
그 "화"라는 놈이 천방지축으로 내 몸을 망치고
관계를 망치고 다녀도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니고 말죠.
그러다 그 화가 휘리릭 가버리고 나면
후회라는 슬픈 자리에 홀로 덩그러니 내 몰린
외로운 나를 깨닫고는 흐느끼기만 하죠.
이와 같이 우리는 내 것이 아닌 생각과 감정에
끌려 다니며 노예 같은 생을 살다가 가기 쉽죠.
초등학생 정도면 알 수 있는 어리석은 행동을
대통령이나 장차관들이라는 사람들이
버젓이 저지르며 살아가죠.
이유가 뭘까요?
그건 욕심에 눈먼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게
주인 자리를 내어 주고 노예의 삶을 택했기 때문이죠.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실수를 통해 무언가 고치고 변화하지 못한다면
사람으로 인정받기 힘들죠.
그게 인지상정이자 하늘의 뜻이기도 하죠.
우리의 오늘이 슬퍼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언제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죠.
사람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집착하고 휘둘렸던
그 생각과 그 감정을 과감히 버려야 하죠.
그것들과 이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내일을 만날 수 있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이별이
상처 난 세상을 새하얗게 덮어주기를
첫눈 닮은 설렘 가득 모아 가난한 소망 지어 보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