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야기 #221.
사람이 가진 근원적 의문 중 하나가
'신'의 존재일 것이다.
하여 사람들은 종교를 만들었다.
불행히도 '신'이 살고 있는 곳은
교회도 절도 하늘도 아닌 듯하다.
그럼 어디 있을까?
예수나 석가 등 선현들이 한 말들을 종합해 보면
그 해답은 '나' 혹은 '마음' 속에 있는 듯하다.
여기서 '나'라는 것은
'에고'라 불리는 욕심덩어리가 아니다.
그 단단한 껍질 속에 환한 빛으로 존재해 온
'신으로서의 나'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에고'라는 허상을 붙들고
그것이 실재하는 '나'라고 믿기 쉽다.
신은 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고 난 후 인간 속으로 들어왔다."
신을 내 속이 아닌 밖에서만 찾는 한
신을 찾거나 만날 수 없다.
비행기는 땅을 박차야 날아오를 수 있다.
나라는 에고를 깨고 버려야만
그 껍질 속에 있는 신을 만날 수 있다.
깨는 고통 없이는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없다.
사람은 가까운 것을 보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여 어리석다 불린다. 사람은 그렇다.
사람의 능력은 대단하죠.
우주여행을 할 정도까지 되었으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사람은 아직 우주의 사소한 법칙 하나도
만들거나 운영하지 못하죠.
사람의 능력은 신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죠.
한 없이 오만하다가도 한 없이 작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종교를 만들어 무언가 신앙하려 하죠.
하지만 종교의 태생이 인간이기에
그 속에서 우주의 진리를 찾을 수는 없죠.
신은 종교를 만들라고 한 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어요.
신은 스스로 그러하고 스스로 존재하기에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게 신앙을 받을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럼 신은 과연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을 알려 준 사람들이 몇 있었죠.
예수라는 사람도 있었고 부처라는 사람도 있었고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해주었죠.
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있죠.
신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우리가 곧 신이라고.
그분들이 이야기 한 내용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상'이라는 에고를 내려놓고
그 속에 온전히 살아 있는 '신'을 만나라는 이야기죠.
그 '신'을 하나님, 부처, 알라, 브라후마 등의 이름으로
각 지역마다 인종마다 다르게 불렀지만
모두 같은 '신'을 가리키는 이름이죠.
그럼 우리는 왜 신을 만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나'라는 강력한 힘을 가진 에고가
본시 하나였던 '신으로서의 나'를
'신'과 '나'로 구분, 분리해 버렸고
종교와 율법이라는 거짓 이름과 가식의 칼로
'신'을 알아볼 수 있는
진실의 눈 마저 찔러버렸기 때문이죠.
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면
그대로 살아가면 될 거예요.
하지만 무언지 모를 근원적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면.
뭔가를 찾아야 할 것 같은 깊은 공허감이 느껴진다면.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밖으로 향했는 에고의 눈 감고
어둠의 에고속에서 미세히 세어 나오는
고운 빛 한 줌 찾아 두려움 떨치고 따라가 보아요.
혹시 알아요?
놀라운 세상을 만날지?
바람이 지나칩니다.
낙엽이 흩어지네요.
시간은 그렇게 아무것도 붙들지 않고 여여히 흐르네요.
저도 이 모든 것과 동무하며 오직 오늘을 흐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