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감성적인 아빠와 달리, 평소 엄마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감정에 큰 동요가 없는 사람이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했던 외할머니를 살뜰히 간병한 엄마는 내게 말했다. 엄마는 외할머니 살아생전 잘 보살펴드려서 후회 없다며, 할머니 가실 때도 마음 편하게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화장터에서 외할머니의 마지막을 보면서 “우리 엄마 이제 진짜 가뿟다”라는 혼잣말을 되뇌었다. 그리고 눈물을 보였다.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외할머니를 보내드리고 난 뒤에 서울로 오기 전 엄마에게 편지를 남겼다.
엄마, 나는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엄마가 얼마나 슬플지 가늠이 안 된다.
근데 엄마가 너무 오래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할머니도 하늘에서 하나뿐인 딸 옥이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실 거야.
외할머니의 부고 앞에서, 또 친한 친구들이 전해온 부고를 받을 때마다 나는 여전히 어떻게 위로를 건네야 할지 어렵다. 살면서 엄마, 아빠가 없는 인생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례식장에 갈 일이 잦아졌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닥치는 부고 연락은 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자주 얼굴을 보는 가까운 지인에게서 온 연락은 더욱 그렇다. 깊은 슬픔 앞에서 나는 어떤 말로 위로를 건네야 하는 걸까. 내가 고른 단어가 위로되긴 할까, 오히려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말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과거엔 지인의 조부모님 부고 문자가 주였다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부모님의 부고 연락이 부쩍 많아졌다. 몇 년 전 친한 언니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 일이다. 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아빠를 잃은 언니가 안타까웠던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것 또한 언니에겐 아플 거라는 잘 알기에, 미안해서 울음을 멈추려 했는데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런 나를 언니는 오히려 다독여줬다. 그리고서 농담을 섞어 말했다.
“부모님 계실 때 잘해. 너는 아빠 있잖아.”
그 뒤로 한동안 언니와 함께 있을 때, 아빠에게서 전화가 오면 일부러 받지 않았던 시기가 있다. 언니에게 미안해서였다. 언니도 아빠가 보고 싶어질 테니까. 평소 서로의 흑역사도 놀려대며 웃어넘기는 사이였지만, 언니가 진짜 슬퍼할까 봐 걱정됐다. 누구에게든 아빠의 자리는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언니에게도 아빠가 바로 옆에 없다는 사실이 괜찮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앞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더 자주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