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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이름 Jun 23. 2023

“그거 알아? 하고싶은 일 할 때는 시간이 빨리 가.“

시간을 보내는 데도 힘이 필요하다고?

요즘 시간이 참 더디게 간다. 에어컨 청소를 하면서는 ‘벌써 여름인가’ 싶다가도 회사에 가서 앉아 있으면 이노무 시간이 도통 가지를 않는다. 퇴근을 해서 아이들이 잠들기까지 대여섯 시간도 그렇게 안 갈 수가 없다. 저녁을 먹이고, 씻기면서도 ‘너희 언제 잘 거야?‘ 몇 번이나 묻고 또 묻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나 보다.


“엄마, 그거 알아? “

“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빨리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가.”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물어봤더니 자기가 뭐 보는 게 있는데 거기서 그렇게 말을 했다고 했다. ‘그래 유튜브도 무작정 나쁘기만 한 건 아니구나’ 싶었다.


“그럼, 너는 언제 시간이 빨리 가?”

“아~ 요새 미술학원 갔을 때 수채화 그리는데 금방 55분이 돼. 더 하고 싶은데 피아노 가야 되니까.”


우주의 스케치북. 뚱실한 그림체가 마음에 든다. 예시로 보여준 사진을 보며 커트를 하는 상황..

이제 막 수채화를 시작한 아이는 그림을 완성하고 싶은데, 어느새 시간이 다 되어 다음 코스로 옮겨가는 게 아쉬웠나 보다. 어떤 날은 수채화 더 그려도 되는지 전화가 오는데 매번 길게 할 수 없으니 그 시간이 더 짧게 느껴졌을 것 같다. 게다가 아이 입장에서는 집에 와서 저녁 먹고 돌아서면 씻으라고 하고, 돌아서면 숙제하라고 하고, 좀 놀아보려고 하면 또 자라고 하니 모든 시간이 아쉽고 부족했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달랐다. 집에 오면 일단 바쁘다. 집을 좀 치우면 밥을 챙겨야 하고 밥 맥이고 나면 씻겨야 하고 돌아서면  숙제도 챙겨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을 다 해도 내가 누울 시간은 아직도 멀었다는 게 어떨 때는 정말 기가 막히다.


우주가 말한 대로라면 집에서는 시간이 빨리 가야 하는데 당장 해내야만 하는 할 일들이 시간의 속도를 이겨버린 느낌이다. 아무튼 그것만 빼고 ‘시간’을 기준으로 요즘 나의 생활을 잘라서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일단 점심시간은 너무 빨리 간다. 커피를 마시고 노닥거리는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별 이야기를 안 해도 고개를 들면 업무시간이다. 반대로 업무시간은 대단히 느리게 가고, 오전시간보다 오후시간이 더 느리다.


당연한 말인지만 평일은 느리고 주말은 원래는 빨랐는데, 아이가 둘이 되고 나니 금요일 밤은 빨리 가고 토요일, 일요일은 엄청나게 느리게 간다. 월요일이 달갑지 않지만, 주말이 이런 속도로 갈 거라면 월요일이 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확실한 건 밤은 짧고 낮은 길다. 잠들어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진짜 아침이 빨리 오는 것 같다. 빨리 찾아오는 아침때문인가. 문제는 잠을 자도 피로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아서 몸이 너무 무겁다는 사실이다. 만성 피로인지 누워 있어도 걸어도 몸이 천근만근이다.


가벼워진 몸으로 이것저것 해야 하는데 도무지 의욕이 오르지 않는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꾸역꾸역 일어나 몸을 움직인다.


요즘 나는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

정말 빨리 가는 시간은 누워서 유튜브와 드라마를 볼 때다. 누워서 뭘 보려면 또 애들이 다 자야 하는데, 동화책을 12권 정도 읽어야 자는 두 녀석을 재우고 나면 목도 칼칼하고 진이 빠진다. 그래서 좋아하는 드라마나 유튜브를 틀어놓고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린다.


이 시간은 체감이 아니라 진짜 너무 짧다. 그것을 빼놓고는 아쉽게 가는 시간도, 빨리 가는 시간도 없다. 모두 정확히 공평하게 1초, 2초, 3초 제 속도대로 간다.


최근 알게 된 시간의 법칙 중 하나는 몸이 힘들면 시간이 한없이 늦게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걷는 것 말고는 운동을 하지 않는데, 처리해야 할 일은 많고 회사에서는 긴장상태로 일을 하다 보니 체력이 말이 아니다. 몸이 피곤하니까 만사가 다 귀찮고 뭘 해도 짜증이 먼저 난다. 그러니 저절로 모든 시간이 천천히 가는 기분이다. 정말 작은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대로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시간을 쓰는 데도 ‘힘’이 필요하다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즐겁고 재미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서 전에 하던 수영도 알아보고 체형교정을 위한 필라테스도 살살 알아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되는지도 계산하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생각만 하며 벌써 한 달을 보냈지만... 아직 아무것도 못했다. 그래도 곧 뭐라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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