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끝나지 않는 편지를 끝내며

by 정희주

편지를 쓰고 편집을 하던 중 불현듯 의문이 찾아왔다. 난 이 편지를 왜 쓰고 있는 것일까? 편지를 받을 아버지도 돌아가신 마당에 난 이 글을 왜 쓰고 있는 것일까?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에 한두 통 쓸 수 있겠다 싶지만 이렇게 나 많은 글을 쓰고, 모으고 편집하는 기획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라도 난 아버지의 죽음과 나의 슬픔을 소재로 글을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닐까? 나의 고통을 도구화하여 나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내 고통을 소재로 하여 위로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 글에 관심을 주는 누군가를 통해 결핍된 애정 욕구를 채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쯤 되니 알 것 같다. 이 편지는 아버지에게 향한 것이 아닌, 나에게 쓰고 싶었던 편지였던 것이다. 사랑한 이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껏 소리 질러 발산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못해준 일을 고백하며 죄책감을 털어내고 싶었다. 소통하지 못했던 사랑만큼을 원망하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이만큼 밖에 안 되는 나를 돌아보고 싶었다.


25. 물방울.jpg 김창열 <25. 물방울>, 195x113cm, 마포에 유채, 1974 ⓒ김창열미술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미술관에서 본 첫 그림.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을 다시 바라본다. 저 물방울은 그림자에 더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화가는 물방울이라는 대상을 그림에 있어, 그림자인 어둠에 더 큰 신경을 썼을 것이다. 어둠을 더 짙게 자세히 묘사할수록 물방울은 그 실체를 영롱히 드러낸다.


난 그동안 정당하지 않은 후회를 통해 나의 부족함을 감추려 했다. 나의 부족함을 정직하게 바라보기보다는 실제보다 더한 고통을 만들어서 내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진짜 해야 할 후회를 하지 않고 나의 마음에 상처 주는 방식으로 고통을 전위시켰다. 마치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신체적 자해를 하는 것처럼, 난 진짜 갈등을 피하기 위해 심리적 자해를 가해왔던 것이다.


이 편지의 시작은 상실에 대한 슬픔이었다. 잘못을 자책하는 회한이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그리움이었다. 그 그리움을 따라 난 기억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이 글쓰기를 통해 한때 슈퍼맨 같았던 만능 재주꾼 아버지를 기억해 냈으며, 한 때 존경하며 이상화했던 어르신이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때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던 고약한 노인네이기도 했지만 아내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연약한 남자이기도 했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지지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과정에서 다시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난 아버지를 잃어버림을 써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내게 들이게 된 것이다. 어둠이 없는 빛이 없고, 고통이 없는 사랑은 없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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